"키워드 : 식산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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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상아문은 1894~1895년 갑오개혁 시기에 농업, 상업, 수산, 종목, 지질, 영업회사 등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던 중앙 관서이다. 갑오개화파 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따라 군국기무처 회의를 거쳐 신설되었다. 농업과 상업 등 국가의 기본 생활 경제를 전담하였으며, 산하에 총무국, 농상국(農桑局), 공상국(工商局), 산림국, 수산국, 지질국, 장려국, 회계국을 두었다.
농상아문 (農商衙門)
농상아문은 1894~1895년 갑오개혁 시기에 농업, 상업, 수산, 종목, 지질, 영업회사 등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던 중앙 관서이다. 갑오개화파 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따라 군국기무처 회의를 거쳐 신설되었다. 농업과 상업 등 국가의 기본 생활 경제를 전담하였으며, 산하에 총무국, 농상국(農桑局), 공상국(工商局), 산림국, 수산국, 지질국, 장려국, 회계국을 두었다.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는 1908년 평양에 설립되었던 자기(磁器) 회사이다. 1908년 50원의 주식 200주를 자산으로 평양 마산동에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1908~1910)에는 평양의 유지 자본가들을 최고경영진으로 두면서 사무직원과 기술인력은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분하여 선발하고, 사무직은 조선인만을 고용하는 식으로 운영하였다. 일제식민지 시기(1910~1919)에 들어서면서 임원이 모두 교체되는 등의 위기를 겪지만, 이후 다양한 건의와 요구가 반영되어 1913년부터 연간 1,200원가량의 정부 지원금이 보조되었다.
평양 자기 제조 주식회사 (平壤 磁器 製造 株式會社)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는 1908년 평양에 설립되었던 자기(磁器) 회사이다. 1908년 50원의 주식 200주를 자산으로 평양 마산동에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1908~1910)에는 평양의 유지 자본가들을 최고경영진으로 두면서 사무직원과 기술인력은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분하여 선발하고, 사무직은 조선인만을 고용하는 식으로 운영하였다. 일제식민지 시기(1910~1919)에 들어서면서 임원이 모두 교체되는 등의 위기를 겪지만, 이후 다양한 건의와 요구가 반영되어 1913년부터 연간 1,200원가량의 정부 지원금이 보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