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실경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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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는 금강산과 그 주변의 명승지를 그린 그림이다. 고려 말에는 불교 성지로, 조선 초기에는 중국 사신이나 황실의 선물로 그려졌다. 조선 중기에는 문인들의 활약으로 금강산이 중요한 그림의 핵심 소재가 되었다. 또 조선 후기에는 진경산수화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정선이나 심사정, 강세황 같은 대가들이 금강산을 즐겨 그리며 독특한 화법을 개발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금강산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예술적 이상을 담는 대상으로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금강산도는 한국적인 화풍을 발전시키며 유구한 역사와 예술적 창조성을 대변하고 있다.
금강산도 (金剛山圖)
금강산도는 금강산과 그 주변의 명승지를 그린 그림이다. 고려 말에는 불교 성지로, 조선 초기에는 중국 사신이나 황실의 선물로 그려졌다. 조선 중기에는 문인들의 활약으로 금강산이 중요한 그림의 핵심 소재가 되었다. 또 조선 후기에는 진경산수화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정선이나 심사정, 강세황 같은 대가들이 금강산을 즐겨 그리며 독특한 화법을 개발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금강산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예술적 이상을 담는 대상으로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금강산도는 한국적인 화풍을 발전시키며 유구한 역사와 예술적 창조성을 대변하고 있다.
안중식(安中植)이 1915년에 전라남도 영광의 모습을 직접 조망하고 그린 대표적인 실경산수화.
영광풍경도 (靈光風景圖)
안중식(安中植)이 1915년에 전라남도 영광의 모습을 직접 조망하고 그린 대표적인 실경산수화.
「무수동도」는 1729년(영조 5) 권이진이 화공을 시켜 자신의 고향인 무수동 일대의 경관을 그리게 한 7폭의 실경 산수화이다. 종이 바탕에 수묵담채로 크기는 각 폭의 세로가 121.5㎝, 가로가 48.3㎝이다. 2010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산수경관의 풍치보다는 권씨 집안의 세거지인 무수동 일대의 종택과 사당, 소유 전답 등을 핵심 제재로 삼아 비중 있게 처리하였다. 조선 중기부터 활발히 제작된 양반 사대부들의 향촌 세거지와 별서를 재현한 실경 산수화로 제작 시기와 경위를 알 수 있어 회화사 연구에 유용한 자료이다.
무수동도 (無愁洞圖)
「무수동도」는 1729년(영조 5) 권이진이 화공을 시켜 자신의 고향인 무수동 일대의 경관을 그리게 한 7폭의 실경 산수화이다. 종이 바탕에 수묵담채로 크기는 각 폭의 세로가 121.5㎝, 가로가 48.3㎝이다. 2010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산수경관의 풍치보다는 권씨 집안의 세거지인 무수동 일대의 종택과 사당, 소유 전답 등을 핵심 제재로 삼아 비중 있게 처리하였다. 조선 중기부터 활발히 제작된 양반 사대부들의 향촌 세거지와 별서를 재현한 실경 산수화로 제작 시기와 경위를 알 수 있어 회화사 연구에 유용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