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아나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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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한인청년연맹은 1930년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이다. 아나키즘(anarchism)과 조선의 민족 해방을 선전하는 활동, 일제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 친일 분자를 숙청하는 직접 행동을 실행하였다. 1937년 조선혁명자연맹으로 개조하고, 조선민족혁명당 등과 함께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남화한인청년연맹 (南華韓人靑年聯盟)
남화한인청년연맹은 1930년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이다. 아나키즘(anarchism)과 조선의 민족 해방을 선전하는 활동, 일제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 친일 분자를 숙청하는 직접 행동을 실행하였다. 1937년 조선혁명자연맹으로 개조하고, 조선민족혁명당 등과 함께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다물단은 1923년 중국 베이징에서 신채호, 유자명, 이회영 등이 조직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이다. 1924년 배천택, 김동삼 등이 조직한 국민당과 통합하여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다. 다물단은 베이징의 친일 파 밀정 김달하를 처단하고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다물단 (多勿團)
다물단은 1923년 중국 베이징에서 신채호, 유자명, 이회영 등이 조직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이다. 1924년 배천택, 김동삼 등이 조직한 국민당과 통합하여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다. 다물단은 베이징의 친일 파 밀정 김달하를 처단하고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강원도 이천에서 조직되었던 무정부주의 운동단체.
이천자유회 (伊川自由會)
1929년 강원도 이천에서 조직되었던 무정부주의 운동단체.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유림 (柳林)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이강훈은 일제강점기에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북만주의 신민부에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으며, 한족총엽합회에 가감하여 동포 청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하였다. 상하이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담하여 주중 일본 공사를 포살하려 하였던 육삼정 의거를 기획한 독립운동가이다.
이강훈 (李康勳)
이강훈은 일제강점기에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북만주의 신민부에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으며, 한족총엽합회에 가감하여 동포 청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하였다. 상하이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담하여 주중 일본 공사를 포살하려 하였던 육삼정 의거를 기획한 독립운동가이다.
1923년 4월 재일한인 박열(1902~1974) 등이 만든 항일운동 단체.
불령사 (不逞社)
1923년 4월 재일한인 박열(1902~1974) 등이 만든 항일운동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