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앵포르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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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만다라」·「혼불-그 빛의 회오리」·「승화」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하인두 (河麟斗)
해방 이후 「만다라」·「혼불-그 빛의 회오리」·「승화」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1963년에 서양화가 남관이 그린 추상화.
역사의 흔적 (歷史의 痕跡)
1963년에 서양화가 남관이 그린 추상화.
전혁림은 해방 이후 「늪」, 「통영항」, 「한국의 문」 등을 그린 서양화가이다. 1938년 부산미술전에 입선하고,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정물」로 입선했다. 1952년 부산 밀다원 다방에서 1955년까지 해마다 개인전을 열었다. 1970년까지 통영 일대와 인근의 갯마을 등 향토적 풍정을 활달한 붓놀림, 짙은 청색조의 추상적인 화면, 부감법으로 그려냈다. 전혁림은 중앙화단과 거리를 두고 고향 통영과 부산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했으며, 독특한 색채와 풍경을 이루는 작품으로 ‘색채의 마술사’ 또는 ‘바다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전혁림 (全爀林)
전혁림은 해방 이후 「늪」, 「통영항」, 「한국의 문」 등을 그린 서양화가이다. 1938년 부산미술전에 입선하고,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정물」로 입선했다. 1952년 부산 밀다원 다방에서 1955년까지 해마다 개인전을 열었다. 1970년까지 통영 일대와 인근의 갯마을 등 향토적 풍정을 활달한 붓놀림, 짙은 청색조의 추상적인 화면, 부감법으로 그려냈다. 전혁림은 중앙화단과 거리를 두고 고향 통영과 부산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했으며, 독특한 색채와 풍경을 이루는 작품으로 ‘색채의 마술사’ 또는 ‘바다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 「전」·「잔설」·「청일」 등을 그린 화가. 한국화가.
안상철 (安相喆)
해방 이후 「전」·「잔설」·「청일」 등을 그린 화가. 한국화가.
추상화는 가시적 형상을 모방해서 재현하는 방식을 벗어나 점·선·면·색채의 순수조형 요소로 구성한 그림이다. 한국의 추상화는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유학하던 김환기, 유영국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전후 1세대 청년 작가들이 주도한 앵포르멜 미술에 이르러 현대미술의 주류가 되었다. 1970년대 단색조의 추상화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일컬어지면서 1980년대까지 화단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199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류에 의해 추상화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 갔다.
추상화 (抽象畵)
추상화는 가시적 형상을 모방해서 재현하는 방식을 벗어나 점·선·면·색채의 순수조형 요소로 구성한 그림이다. 한국의 추상화는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유학하던 김환기, 유영국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전후 1세대 청년 작가들이 주도한 앵포르멜 미술에 이르러 현대미술의 주류가 되었다. 1970년대 단색조의 추상화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일컬어지면서 1980년대까지 화단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199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류에 의해 추상화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 갔다.
현대미술가협회는 1956년 설립된 현대적 조형을 내세운 미술가들의 단체이다. 창립 당시 이십 대의 젊은 작가들로서 저항 의식에서 그룹을 형성하였다. 현실의 합리성을 부정하는 새로운 미술을 주창하며 기성의 화단에 반기를 들었다. 앵포르멜 회화의 물질성과 비형태성이 전후 감성을 표출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간주되었다. 1957년 김영환, 이철, 김종휘, 장성순, 김청관, 문우식, 김창열, 하인두가 1회전을 열었다. 1960년까지 총 6회전을 열었다. 1962년 ‘60년미술가협회’와 통합하여 ‘악뛰엘’을 결성함으로써 해산되었다.
현대미술가협회 (現代美術家協會)
현대미술가협회는 1956년 설립된 현대적 조형을 내세운 미술가들의 단체이다. 창립 당시 이십 대의 젊은 작가들로서 저항 의식에서 그룹을 형성하였다. 현실의 합리성을 부정하는 새로운 미술을 주창하며 기성의 화단에 반기를 들었다. 앵포르멜 회화의 물질성과 비형태성이 전후 감성을 표출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간주되었다. 1957년 김영환, 이철, 김종휘, 장성순, 김청관, 문우식, 김창열, 하인두가 1회전을 열었다. 1960년까지 총 6회전을 열었다. 1962년 ‘60년미술가협회’와 통합하여 ‘악뛰엘’을 결성함으로써 해산되었다.
60년미술협회는 1960년에 국전의 제도와 기성 화단에 대한 거부 의식에서 설립된 미술 협회이다. 서울대학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생 각 6명으로 이루어진 미술 단체로, 전위적인 미술을 구현하였다. 두 차례 전시회를 열었는데 제1회는 덕수궁 담 벽에 가두전 형식으로 열었고 제2회 전시는 현대미술가협회와 연립전으로 열었다. 이 협회는 두 번의 전시로 막을 내리고 이후 현대 미협과 연합하여 악뛰엘(Actuel, 1962∼1964)을 창립하였다. 이들은 두터운 마티에르, 격렬한 붓질 등 앵포르멜적인 작품으로 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앵포르멜 화풍을 선도하였다.
60년미술협회 (六十年美術協會)
60년미술협회는 1960년에 국전의 제도와 기성 화단에 대한 거부 의식에서 설립된 미술 협회이다. 서울대학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생 각 6명으로 이루어진 미술 단체로, 전위적인 미술을 구현하였다. 두 차례 전시회를 열었는데 제1회는 덕수궁 담 벽에 가두전 형식으로 열었고 제2회 전시는 현대미술가협회와 연립전으로 열었다. 이 협회는 두 번의 전시로 막을 내리고 이후 현대 미협과 연합하여 악뛰엘(Actuel, 1962∼1964)을 창립하였다. 이들은 두터운 마티에르, 격렬한 붓질 등 앵포르멜적인 작품으로 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앵포르멜 화풍을 선도하였다.
악뛰엘은 현대미술가협회와 60년미술가협회가 연합하여 결성한 미술 단체이다. 1961년 경복궁미술관에서 박서보, 윤명로, 김창열, 정영렬, 정상화, 김봉태 등이 연합전을 가진 뒤 결성했다. 1962년 3월 1회전, 1964년 4월 2회전이 열렸다. 전시는 2회전으로 막을 내렸다. 젊은 작가들의 전략적인 연합으로 홍대와 서울대를 떠난 이념적 그룹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협회의 명칭에서도 실천적인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념적 지향성이 강하게 표출되었다. 그러나 악뛰엘은 내부의 힘을 급격히 상실하면서 점차 소그룹 운동으로 전이되어 갔다.
악뛰엘 (actuel)
악뛰엘은 현대미술가협회와 60년미술가협회가 연합하여 결성한 미술 단체이다. 1961년 경복궁미술관에서 박서보, 윤명로, 김창열, 정영렬, 정상화, 김봉태 등이 연합전을 가진 뒤 결성했다. 1962년 3월 1회전, 1964년 4월 2회전이 열렸다. 전시는 2회전으로 막을 내렸다. 젊은 작가들의 전략적인 연합으로 홍대와 서울대를 떠난 이념적 그룹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협회의 명칭에서도 실천적인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념적 지향성이 강하게 표출되었다. 그러나 악뛰엘은 내부의 힘을 급격히 상실하면서 점차 소그룹 운동으로 전이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