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는 가시적 형상을 모방해서 재현하는 방식을 벗어나 점·선·면·색채의 순수조형 요소로 구성한 그림이다. 한국의 추상화는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유학하던 김환기, 유영국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전후 1세대 청년 작가들이 주도한 앵포르멜 미술에 이르러 현대미술의 주류가 되었다. 1970년대 단색조의 추상화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일컬어지면서 1980년대까지 화단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199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류에 의해 추상화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 갔다.
한국의 추상화는 1930년대 중반 경 일본에서 유학하던 몇몇 젊은 미술학도들에 의해 시작된 이래,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전후 1세대 청년 작가들이 주도한 앵포르멜 미술에 이르러 현대미술의 주류가 되었다.
전후의 혼란스러운 사회와 기성 화단에 저항하며 집단적 미술운동의 성격을 뗬던 앵포르멜(Informel) 미술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추진력을 상실하여 경화현상을 보였고, 해프닝(Happening), 개념미술(Conceptual Art) 등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세대의 도전에 직면하였다.
1970년대 중반 경에 시작된 단색조 회화에 의해 재차 추상화의 시대를 맞이하기까지 오리진(Origin) 그룹의 몇몇 화가에 의해 기하학적 추상화가 한국 추상화의 맥을 이어갔다.
단색조의 추상화는 서구 모더니즘 미술 이론의 평면성과 균질성을 한국의 백색(白色), 동양의 자연관 및 정신과 결합시켜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일컬어지면서 1980년대까지 화단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민중미술 및 신형상회화의 도전과 1990년대에 도래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기류에 의해 추상화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갔다.
한국에서의 추상미술은 1930년대 중반경 일본에 체류하던 김환기(金煥基), 유영국(劉永國), 이규상(李揆祥) 등 극소수의 청년 미술학도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김환기는 몬드리안(Piet Mondrian)류의 구성에 서정성을 가미한 추상 작품을 하였고, 유영국은 판 부조의 순수기하학적 도형을, 이규상은 기호적 구성작업을 전개하였다.
이들 한국 추상미술 1세대의 해방 이전 활동은 일본의 전위 단체전인 자유미술가협회전(自由美術家協會展), 미술문화협회전(美術文化協會展), 이과전(二科展)의 구실회(九室會) 등을 통해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국내 활동과 영향력은 미미했다.
일제강점기에 전개된 추상미술에 이어서 2기 추상미술은 전후 1세대 화가들에 의해 전개되었다. 피식민의 역사와 전쟁을 겪은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규범과 가치, 특히 국전을 장악한 기성 미술계에 도전하여 프랑스의 앵포르멜과 미국의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으로부터 비정형의 격정적 표현주의를 흡수하였다.
‘앵포르멜’ 혹은 ‘격렬한 추상표현주의 미술’이라고 불리는 전쟁 직후의 추상미술 조류는 1958년 제2회 현대미술가협회전(現代美術家協會展)을 시작으로 196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大韓民國美術展覽會)를 장악할 정도로 유행하였다. 1960년대 말경에 이르러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직면하여 종언을 고하고, 오리진 그룹만이 기하학적 추상으로 추상화의 역사를 변화, 지속시켰다.
1975년에 일본 도쿄화랑(東京畵廊)에서 기획한 ‘다섯 가지 흰색전’을 시작으로 1980년대까지 화단을 풍미했던 단색화는 화면의 평면성과 균질성이라는 모더니즘 회화의 이론을 수용하는 동시에 백색의 비물질성, 정신성에 집중하여 민족성을 표방하였다.
일루전의 반영으로서의 회화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실재인 회화로서 미니멀리즘(Minimalism) 미술을 표방하면서도 민족적 감성에 접근함으로써 단색화는 ‘한국적 미니멀리즘’으로 평가받았다.
계급의식과 소통을 주장하는 1980년대 민중미술 계열의 도전, 유럽 신형상회화의 유입, 199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적 기류의 수용에 따라 ‘집단 개성’이라 불릴 정도로 미술계를 단일화시킨 단색조 추상화의 기세는 소진되었고, 다시 구상의 복권이 이루어지는 한편 네오 제오(neo-geo), 포스트 컨셉츄얼리즘(Post-Conceptualism) 등의 추상형식의 미술이 전개되었다.
21세기 초의 추상미술은 열린 추상, 포스트모던적 추상, 후기 추상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모더니즘의 비판적 성찰을 위한 개념작업으로서의 추상을 시도한다.
1930년대에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에 참여하는 활동으로 시작된 한국의 추상화는 식민 상황 속에서도 추상미술의 국제성과 보편성을 수용하였다. 이후 형상미술의 복권에 의해 부침을 계속하면서도 국제성과 한국성의 공존을 위한 모색을 시도하여 ‘한국적 모더니즘’이라는 고유의 추상화를 창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