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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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말 북원을 거점으로 성장한 반신라적인 세력가이다. 892년 부하인 궁예로 하여금 지금의 영서 지방을 공략하도록 하여 차지하였다.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897년에는 국원성 등 30여 성을 세력권으로 하였다. 궁예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였고, 900년 그의 세력과 세력권은 궁예에게 흡수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901년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웠다.
양길 (梁吉)
양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말 북원을 거점으로 성장한 반신라적인 세력가이다. 892년 부하인 궁예로 하여금 지금의 영서 지방을 공략하도록 하여 차지하였다.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897년에는 국원성 등 30여 성을 세력권으로 하였다. 궁예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였고, 900년 그의 세력과 세력권은 궁예에게 흡수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901년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웠다.
사상(舍上)은 894년(진성여왕 8)에 궁예가 단위 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한 무관직이다. 당시 궁예는 3,500명의 병력을 확보하였는데, 이를 14개 부대로 나누고 각 부대의 지휘관으로 사상을 두었다. 1개 부대를 25명씩 10조로 편성한 것이라면, 그것은 6세기 이래 역역과 군역 편성의 기본 원리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사상 (舍上)
사상(舍上)은 894년(진성여왕 8)에 궁예가 단위 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한 무관직이다. 당시 궁예는 3,500명의 병력을 확보하였는데, 이를 14개 부대로 나누고 각 부대의 지휘관으로 사상을 두었다. 1개 부대를 25명씩 10조로 편성한 것이라면, 그것은 6세기 이래 역역과 군역 편성의 기본 원리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원회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말기 죽주(竹州: 지금의 경기도 안성시)를 거점으로 등장한 반신라적인 세력가 기훤의 부하였다. 궁예와 결탁하였으며, 그와 함께 기훤을 떠나 양길의 부하가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궁예의 초기 세력에 속하는 인물이나 상세한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원회 (元會)
원회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말기 죽주(竹州: 지금의 경기도 안성시)를 거점으로 등장한 반신라적인 세력가 기훤의 부하였다. 궁예와 결탁하였으며, 그와 함께 기훤을 떠나 양길의 부하가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궁예의 초기 세력에 속하는 인물이나 상세한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진성여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87~897년이다. 즉위 초에는 조세를 면제하고 황룡사에 백좌강경을 설치하는 등 민심수습에 노력했다. 그러나 숙부이자 남편이던 상대등 위홍이 죽자 정치기강이 갑자기 문란해졌고 사방에서 도적이 봉기했다. 원종과 애노의 난도 평정하지 못했고 북원의 양길은 궁예를 시켜 명주를 함락시켰으며, 완산주에서는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했다. 894년 당에서 돌아온 최치원이 시무10조를 올렸지만 시행되지 못했다. 897년 헌강왕의 아들 요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 해에 죽었다.
진성여왕 (眞聖女王)
진성여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87~897년이다. 즉위 초에는 조세를 면제하고 황룡사에 백좌강경을 설치하는 등 민심수습에 노력했다. 그러나 숙부이자 남편이던 상대등 위홍이 죽자 정치기강이 갑자기 문란해졌고 사방에서 도적이 봉기했다. 원종과 애노의 난도 평정하지 못했고 북원의 양길은 궁예를 시켜 명주를 함락시켰으며, 완산주에서는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했다. 894년 당에서 돌아온 최치원이 시무10조를 올렸지만 시행되지 못했다. 897년 헌강왕의 아들 요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 해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