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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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은 고려시대 제34대(재위: 1389~1392) 왕이다. 고려 왕조의 마지막 왕이다. 신종(神宗)의 7대손으로 이성계 세력이 창왕을 폐위하고 왕으로 옹립했다. 재위 기간 동안 관제 개편, 유학 진흥, 사원 재산 몰수, 한양 천도 시도, 과전법 실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이 이루어졌다. 개혁의 방향을 둘러싼 정치적 분쟁 속에서 고려 왕실의 존속을 주장하던 정몽주가 살해되면서 이성계가 왕으로 추대되고 공양왕은 폐위되었다.
공양왕 (恭讓王)
공양왕은 고려시대 제34대(재위: 1389~1392) 왕이다. 고려 왕조의 마지막 왕이다. 신종(神宗)의 7대손으로 이성계 세력이 창왕을 폐위하고 왕으로 옹립했다. 재위 기간 동안 관제 개편, 유학 진흥, 사원 재산 몰수, 한양 천도 시도, 과전법 실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이 이루어졌다. 개혁의 방향을 둘러싼 정치적 분쟁 속에서 고려 왕실의 존속을 주장하던 정몽주가 살해되면서 이성계가 왕으로 추대되고 공양왕은 폐위되었다.
왕규의 난은 945년(혜종 2) 고려 전기 혜종 때 왕규가 왕위 쟁탈을 위해 일으킨 모반 사건이다. 왕규는 태조와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 사이의 아들이자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廣州院君)을 왕위에 앉히려 난을 일으켰다. 이 난은 왕요(王堯: 뒤의 정종(定宗))와 결탁한 왕식렴(王式廉)의 서경 군사력이 개입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왕규의 난 (王規의 亂)
왕규의 난은 945년(혜종 2) 고려 전기 혜종 때 왕규가 왕위 쟁탈을 위해 일으킨 모반 사건이다. 왕규는 태조와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 사이의 아들이자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廣州院君)을 왕위에 앉히려 난을 일으켰다. 이 난은 왕요(王堯: 뒤의 정종(定宗))와 결탁한 왕식렴(王式廉)의 서경 군사력이 개입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