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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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우묘(王旴墓)는 평양직할시 락랑구역 석암동에 있는 왕우의 무덤으로 알려진 낙랑군의 귀틀무덤이다. 일명 '대동석암리205호분'이라고도 한다. 1925년 도쿄제국대학 문학부의 사업으로 발굴이 실시되었다. 동혈합장 귀틀무덤으로 출토 유물은 토기류, 금공품류, 청동기류, 칠기류로 세분할 수 있다. 특히 왕우인신(王旴印信)이 새겨진 목제 양면인이 출토되어 무덤의 주인공이 왕우임을 알 수 있다. 무덤의 형식과 출토 유물로 미루어 보면, 1세기 중반에 조영되어 1세기 후반까지 세 번의 추가장이 이루어진 낙랑 최고위급 인물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왕우묘 (王旴墓)
왕우묘(王旴墓)는 평양직할시 락랑구역 석암동에 있는 왕우의 무덤으로 알려진 낙랑군의 귀틀무덤이다. 일명 '대동석암리205호분'이라고도 한다. 1925년 도쿄제국대학 문학부의 사업으로 발굴이 실시되었다. 동혈합장 귀틀무덤으로 출토 유물은 토기류, 금공품류, 청동기류, 칠기류로 세분할 수 있다. 특히 왕우인신(王旴印信)이 새겨진 목제 양면인이 출토되어 무덤의 주인공이 왕우임을 알 수 있다. 무덤의 형식과 출토 유물로 미루어 보면, 1세기 중반에 조영되어 1세기 후반까지 세 번의 추가장이 이루어진 낙랑 최고위급 인물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조선 전기에, 함경도선위사, 전라도도체찰사, 지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석명 (朴錫命)
조선 전기에, 함경도선위사, 전라도도체찰사, 지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우왕은 고려 제32대(1374~1388) 왕이다. 신돈의 시비(侍婢)인 반야(般若) 소생으로, 1374년(공민왕 23) 공민왕이 시해 당한 후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반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었다. 1388년(우왕 14) 명에서 철령위(鐵嶺衛) 설치를 통보해 오자 최영과 함께 요동 정벌을 단행했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 등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1389년(공양왕 1)에 죽임을 당하였다.
우왕 (禑王)
우왕은 고려 제32대(1374~1388) 왕이다. 신돈의 시비(侍婢)인 반야(般若) 소생으로, 1374년(공민왕 23) 공민왕이 시해 당한 후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반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었다. 1388년(우왕 14) 명에서 철령위(鐵嶺衛) 설치를 통보해 오자 최영과 함께 요동 정벌을 단행했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 등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1389년(공양왕 1)에 죽임을 당하였다.
명나라 말기의 문인, 왕우가 주돈이·정호·정이·장재의 글을 담은 『근사록』에 주희의 글을 추가하여 엮은 유교서.
오자근사록 (五子近思錄)
명나라 말기의 문인, 왕우가 주돈이·정호·정이·장재의 글을 담은 『근사록』에 주희의 글을 추가하여 엮은 유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