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왜인"
검색결과 총 9건
수직왜인은 조선시대, 조선 정부에서 관직을 제수받은 일본인이다. 수직왜인에는 조선 정부에서 관직을 제수받고 식량과 토지, 가옥, 노비 등을 하사받아 조선에 정착하여 거주한 향화 수직왜인과 일본에 거주하면서 관직을 받고 조선과 통교상의 혜택을 입은 일본 거주 수직왜인으로 나뉜다. 이들이 받은 관직은 그 공로나 신분에 따라 사정(司正) · 사과(司果) 등 미관말직에서부터 당상관에 이르렀으며, 이들에게는 관직에 상응하는 예우와 관복이 내려졌다.
수직왜인 (受職倭人)
수직왜인은 조선시대, 조선 정부에서 관직을 제수받은 일본인이다. 수직왜인에는 조선 정부에서 관직을 제수받고 식량과 토지, 가옥, 노비 등을 하사받아 조선에 정착하여 거주한 향화 수직왜인과 일본에 거주하면서 관직을 받고 조선과 통교상의 혜택을 입은 일본 거주 수직왜인으로 나뉜다. 이들이 받은 관직은 그 공로나 신분에 따라 사정(司正) · 사과(司果) 등 미관말직에서부터 당상관에 이르렀으며, 이들에게는 관직에 상응하는 예우와 관복이 내려졌다.
1200년(신종 3) 금주(金州 :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에서 잡족인(雜族人)이 일으킨 반란.
금주 잡족의 난 (金州 雜族의 亂)
1200년(신종 3) 금주(金州 :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에서 잡족인(雜族人)이 일으킨 반란.
조선후기 동래 왜관을 중심으로 대외관계에 관한 사실을 편록한 외교서.
동래접왜사목초 (東萊接倭事目抄)
조선후기 동래 왜관을 중심으로 대외관계에 관한 사실을 편록한 외교서.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우리 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약탈을 하던 일본의 해적이다. 일본 정국의 불안정으로 남부 지방 일부 세력이 해적화하고, 동아시아의 정세혼란으로 왜구퇴치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구의 약탈은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갔다. 한반도의 해안지대만이 아니라 내륙에까지 침범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왜구는 고려말 조선초에 가장 심했고, 특히 고려 말 약 40년간은 그 피해가 막대해서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지속적인 왜구소탕 작업, 고려와 조선의 쓰시마 정벌에도 불구하고 왜구 침입은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되었다.
왜구 (倭寇)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우리 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약탈을 하던 일본의 해적이다. 일본 정국의 불안정으로 남부 지방 일부 세력이 해적화하고, 동아시아의 정세혼란으로 왜구퇴치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구의 약탈은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갔다. 한반도의 해안지대만이 아니라 내륙에까지 침범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왜구는 고려말 조선초에 가장 심했고, 특히 고려 말 약 40년간은 그 피해가 막대해서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지속적인 왜구소탕 작업, 고려와 조선의 쓰시마 정벌에도 불구하고 왜구 침입은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되었다.
조선 시대 삼포를 통해 들어온 왜인들이 가져온 물화를 저장하던 창고이다. 경상도 성주목 임내인 화원현에 위치하고 있다. 현지 매매에 따른 잠상의 불법 행위와 서울로 수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단을 막기 위하여 서울 상인들이 값을 치르고 왜물고에서 물건을 매매하도록 하였다.
왜물고 (倭物庫)
조선 시대 삼포를 통해 들어온 왜인들이 가져온 물화를 저장하던 창고이다. 경상도 성주목 임내인 화원현에 위치하고 있다. 현지 매매에 따른 잠상의 불법 행위와 서울로 수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단을 막기 위하여 서울 상인들이 값을 치르고 왜물고에서 물건을 매매하도록 하였다.
삼국시대, 신라에서 왜인(倭人)의 영접 등에 관한 일을 맡은 관서.
왜전 (倭典)
삼국시대, 신라에서 왜인(倭人)의 영접 등에 관한 일을 맡은 관서.
고려후기 문하평리, 양광전라경상도도절제체찰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정지 (鄭地)
고려후기 문하평리, 양광전라경상도도절제체찰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 후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설치된 군사기구.
진변만호부 (鎭邊萬戶府)
고려 후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설치된 군사기구.
삼국시대 때, 대보 등을 역임한 신라 건국 초기의 관리.
호공 (瓠公)
삼국시대 때, 대보 등을 역임한 신라 건국 초기의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