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조선 정부에서 관직을 제수받은 일본인.
설치시기
향화 수직왜인은 태조 대와 태종 대에 집중 발생하였으며, 1443년(세종 25)에 계해약조(癸亥約條)를 계기로 왜구의 침입이 사라지면서 일본 거주 수직왜인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향화 수직왜인과 일본거주 수직왜인
일본 거주 수직왜인에는 왜구의 두목이거나 그 일족, 왜구에 붙잡혀 간 피로인을 송환하였거나 또는 표류인을 구조하여 송환한 공이 있는 자, 조선에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였던 적왜(賊倭)를 잡아 조선에 보냈거나 참수한 공이 있는 자, 조선의 사행을 호송하였거나 사신으로 왕래하는 등 통교상의 유공자, 대마도주의 휘하에 있던 사람[관하인(管下人)]들이 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고신(告身)에 상응하는 갓과 신발[입화(笠靴)], 품대, 관복(冠服)을 하사받았으며, 1년에 한 차례씩 국왕에게 친조(親朝)를 하였고, 조공과 회사라고 하는 일종의 조공무역을 하였다. 이 외에도 도서(圖書)를 받거나 세사미두(歲賜米豆)를 받은 자도 많았다.
임진왜란 이후 수직왜인
임진왜란 이후의 유공자 5인만이 수직인으로 조선에 도항하여 접대를 허락받을 수 있었고, 수직인선(受職人船) 5척이 1637년(인조 15)부터는 연례송사(年例送使)의 겸대제도(兼帶制度) 속에 편입됨으로써 1637년부터는 한일관계사 속에서 그 모습이 사라지게 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경국대전(經國大典)』
-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단행본
- 한문종, 『조선 전기 향화 · 수직 왜인 연구』(국학자료원, 2001)
- 이현종, 『조선 전기 대일 교섭사 연구』(한국연구원, 1964)
- 中村榮孝, 『日鮮關係史の硏究』 上(吉川弘文館, 1965)
논문
- 한문종, 「조선 전기 대일외교정책연구: 대마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전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 松尾弘毅, 「中世日朝關係における前期受職人とその變遷」(『전북사학』 35, 전북사학회, 200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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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시대에,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살던 일본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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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조선 시대에, 일본의 사절로 조선에 온 일본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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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선박을 설계하여 만드는 기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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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광석을 용광로에 넣고 녹여서 함유한 금속을 분리ㆍ추출하여 정제하는 기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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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병이나 상처를 고치는 기술. 또는 의학에 관련되는 기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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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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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갓과 의복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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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임금이 몸소 나라를 다스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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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겉으로는 조공의 형식을 취하면서 실제로는 서로 물품을 매매하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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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조선 세종 때부터 해마다 쓰시마(對馬) 도주(島主)에게 내려 주던 쌀과 콩. 계해조약에 따라 처음에는 200석을 주었으나, 중종 때 삼포 왜란 이후 100석으로 줄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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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일정한 방침이나 목적에 따라 행위를 제한하거나 제약하기 위한 방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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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조선 시대에, 해마다 조선을 오가며 무역에 종사하던 일본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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