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외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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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깨달음을 이룬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 학가산(鶴駕山)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시대에 국가의 문헌을 보관하였으나 왜구가 가까이 침입해오자 충주 개천사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고려 외사고(外史庫)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767년에 조성한 삼장보살도가 국가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학가산 보문사 (鶴駕山 普門寺)
보문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깨달음을 이룬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 학가산(鶴駕山)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시대에 국가의 문헌을 보관하였으나 왜구가 가까이 침입해오자 충주 개천사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고려 외사고(外史庫)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767년에 조성한 삼장보살도가 국가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사고는 고려·조선시대에 역대 실록 등 중요 기록을 보관하던 시설이다. 조선 초기에는 내사고와 충주 외사고에서 실록을 보관하였으며, 이후 성주와 전주 사고가 증설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 사고본만 병화를 면하여 보존될 수 있었고, 이후 이를 저본으로 새롭게 제작한 실록 3부를 원본, 교정본과 함께 춘추관·강화부·묘향산·태백산·오대산에 분산 보관하였다. 이괄의 난으로 춘추관 실록이 소실된 이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실록을 분장하였으나, 근현대 시기를 거치며 상당수 훼손되었다. 현재는 규장각, 국가기록원 등에 보관되어 있다.
사고 (史庫)
사고는 고려·조선시대에 역대 실록 등 중요 기록을 보관하던 시설이다. 조선 초기에는 내사고와 충주 외사고에서 실록을 보관하였으며, 이후 성주와 전주 사고가 증설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 사고본만 병화를 면하여 보존될 수 있었고, 이후 이를 저본으로 새롭게 제작한 실록 3부를 원본, 교정본과 함께 춘추관·강화부·묘향산·태백산·오대산에 분산 보관하였다. 이괄의 난으로 춘추관 실록이 소실된 이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실록을 분장하였으나, 근현대 시기를 거치며 상당수 훼손되었다. 현재는 규장각, 국가기록원 등에 보관되어 있다.
마니산사고는 실록을 비롯한 국가 주요 사적을 보관하던 강화도의 외사고(外史庫)이다. 임진왜란 이후 새롭게 제작된 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4곳의 외사고 설치가 추진됨에 따라 강화도 마니산 기슭에 사고가 신설되어 실록의 원본을 보관하였던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다만, 최근의 연구를 통해 마니산사고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지적됨에 따라, 정족산사고가 설치되기 이전까지 강화도의 사고는 강화부 내에 설치되어 있었다는 학설이 제시되었다.
마니산사고 (摩尼山史庫)
마니산사고는 실록을 비롯한 국가 주요 사적을 보관하던 강화도의 외사고(外史庫)이다. 임진왜란 이후 새롭게 제작된 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4곳의 외사고 설치가 추진됨에 따라 강화도 마니산 기슭에 사고가 신설되어 실록의 원본을 보관하였던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다만, 최근의 연구를 통해 마니산사고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지적됨에 따라, 정족산사고가 설치되기 이전까지 강화도의 사고는 강화부 내에 설치되어 있었다는 학설이 제시되었다.
성주사고는 조선 전기에 실록과 같은, 국가 중요 사적을 보관 · 관리하던 외사고의 하나이다. 이 사고는 1439년(세종 21) 7월 춘추관이 올린 외사고 확충 계획에 따라 설치되었으며, 춘추관 내사고와 함께 외사고인 충주 · 전주 · 성주의 사고가 정비되어 4사고 체계가 성립되었다. 성주사고는 1538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보관하고 있던 실록과 함께 파괴 · 소실되었다. 전란 이후 외사고가 산간의 오지나 도서 지역으로 이설됨에 따라 성주사고를 비롯한 조선 전기의 사고는 모두 복구되지 못하였다.
성주사고 (星州史庫)
성주사고는 조선 전기에 실록과 같은, 국가 중요 사적을 보관 · 관리하던 외사고의 하나이다. 이 사고는 1439년(세종 21) 7월 춘추관이 올린 외사고 확충 계획에 따라 설치되었으며, 춘추관 내사고와 함께 외사고인 충주 · 전주 · 성주의 사고가 정비되어 4사고 체계가 성립되었다. 성주사고는 1538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보관하고 있던 실록과 함께 파괴 · 소실되었다. 전란 이후 외사고가 산간의 오지나 도서 지역으로 이설됨에 따라 성주사고를 비롯한 조선 전기의 사고는 모두 복구되지 못하였다.
충주사고(忠州史庫)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었던 고려 말·조선 전기의 서고(書庫)이다. 고려 말기 왜구의 침탈이 거세짐에 따라 해인사 등지에 설치되었던 외사고가 중부 내륙의 충주로 이관하여 안착하게 되었다. 충주사고는 조선이 건국된 이후 충주 개천사에서 충주 객사 동남쪽으로 이설된 외에는 큰 변화 없이 외사고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439년 전주·성주사고가 신설될 때까지 유일한 외사고로 기능하였다. 충주사고에는 고려 이래의 귀중한 서책들을 많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이후 다시 복구되지 못하였다.
충주사고 (忠州史庫)
충주사고(忠州史庫)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었던 고려 말·조선 전기의 서고(書庫)이다. 고려 말기 왜구의 침탈이 거세짐에 따라 해인사 등지에 설치되었던 외사고가 중부 내륙의 충주로 이관하여 안착하게 되었다. 충주사고는 조선이 건국된 이후 충주 개천사에서 충주 객사 동남쪽으로 이설된 외에는 큰 변화 없이 외사고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439년 전주·성주사고가 신설될 때까지 유일한 외사고로 기능하였다. 충주사고에는 고려 이래의 귀중한 서책들을 많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이후 다시 복구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