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유인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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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멸망한 뒤 660년에서 663년까지 왕족·군인 등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던 부흥운동.
백제 부흥운동 (百濟 復興運動)
백제가 멸망한 뒤 660년에서 663년까지 왕족·군인 등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던 부흥운동.
매소성전투는 675년(문무왕 15) 나당전쟁 중에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맞아 매소성에서 싸워 승리를 거둔 큰 전투이다. 매소성의 위치는 알 수 없다. 675년 당나라 대규모 원정군이 신라 칠중성을 함락하고 매소성에 이근행(李謹行)의 20만 대군을 주둔시켰다. 신라가 식량과 군수물자를 보급하려고 온 당의 설인귀 함대를 격파하고 매소성을 공격했다. 보급이 끊긴 당군은 신라의 공격에 말과 많은 병기를 버리고 북쪽으로 퇴각하였다. 이 전투의 패배 이후 당은 원정군의 보급문제·국내여론 악화와 더불어 토번의 중국 침입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매소성전투 (買肖城戰鬪)
매소성전투는 675년(문무왕 15) 나당전쟁 중에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맞아 매소성에서 싸워 승리를 거둔 큰 전투이다. 매소성의 위치는 알 수 없다. 675년 당나라 대규모 원정군이 신라 칠중성을 함락하고 매소성에 이근행(李謹行)의 20만 대군을 주둔시켰다. 신라가 식량과 군수물자를 보급하려고 온 당의 설인귀 함대를 격파하고 매소성을 공격했다. 보급이 끊긴 당군은 신라의 공격에 말과 많은 병기를 버리고 북쪽으로 퇴각하였다. 이 전투의 패배 이후 당은 원정군의 보급문제·국내여론 악화와 더불어 토번의 중국 침입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된 삼국시대 당나라 장수 유인원 관련 기념비.
부여 당 유인원 기공비 (扶餘 唐 劉仁願 紀功碑)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된 삼국시대 당나라 장수 유인원 관련 기념비.
남북국시대 때, 파진찬, 이찬 관등에 임명된 통일신라의 귀족·관리.
김삼광 (金三光)
남북국시대 때, 파진찬, 이찬 관등에 임명된 통일신라의 귀족·관리.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주체가 되어, 일본의 지원병과 합세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과 벌였던 국제적인 싸움.
백강구전투 (百江口戰鬪)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주체가 되어, 일본의 지원병과 합세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과 벌였던 국제적인 싸움.
흑치상지는 삼국시대 백제의 달솔로, 풍달군장을 역임한 관리이자 장군이다. 백제 멸망시 항복했으나 당나라 군의 약탈에 분개하여 족장 10여 명과 함께 임존성을 근거지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한때 기세를 떨쳤다. 하지만 다시 항복한 다음 당나라 편에 서서 임존성 함락을 도운 후 당에 가서 무관이 되었다. 부흥운동 종식 후 웅진도독부의 군장이 되었다가 신라의 공격으로 도독부가 소멸하면서 다시 당으로 돌아갔다. 토번과 돌궐을 치는 데 공을 세워 귀족 작호까지 받았으나 측천무후 때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로 옥에 갇혔다가 자결했다.
흑치상지 (黑齒常之)
흑치상지는 삼국시대 백제의 달솔로, 풍달군장을 역임한 관리이자 장군이다. 백제 멸망시 항복했으나 당나라 군의 약탈에 분개하여 족장 10여 명과 함께 임존성을 근거지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한때 기세를 떨쳤다. 하지만 다시 항복한 다음 당나라 편에 서서 임존성 함락을 도운 후 당에 가서 무관이 되었다. 부흥운동 종식 후 웅진도독부의 군장이 되었다가 신라의 공격으로 도독부가 소멸하면서 다시 당으로 돌아갔다. 토번과 돌궐을 치는 데 공을 세워 귀족 작호까지 받았으나 측천무후 때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로 옥에 갇혔다가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