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윤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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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유수 윤근수가 황해도 연안부(현 연백군 연안읍)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을 수록하여 조선 고종 연간에 편찬한 읍지.
연안부지 (延安府誌)
개성유수 윤근수가 황해도 연안부(현 연백군 연안읍)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을 수록하여 조선 고종 연간에 편찬한 읍지.
양만춘은 삼국시대 고구려 안시성 성주이다. 645년 안시성의 성주로서 당 태종의 공격을 막아 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명대의 웅종곡이 저술한 『당서지전통속연의』에서 등장인물의 하나로 창작되었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조선 사회에 전해져 이후의 문헌에 전승되었다.
양만춘 (楊萬春)
양만춘은 삼국시대 고구려 안시성 성주이다. 645년 안시성의 성주로서 당 태종의 공격을 막아 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명대의 웅종곡이 저술한 『당서지전통속연의』에서 등장인물의 하나로 창작되었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조선 사회에 전해져 이후의 문헌에 전승되었다.
이안눌은 조선 후기에, 충청도순찰사, 형조판서, 홍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71년(선조 4)에 출생하여 1637년(인조 15)에 사망하였다. 자는 자민, 호는 동악이고,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갔다. 전쟁이 끝난 후에 병세가 악화되어 죽었다. 당시(唐詩)에 뛰어나 이태백에 비유되었다. 문집에 실린 4,379수라는 방대한 양의 시는 지역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서 민중 생활사와 사회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저서에 『동악집』 26권이 있다.
이안눌 (李安訥)
이안눌은 조선 후기에, 충청도순찰사, 형조판서, 홍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71년(선조 4)에 출생하여 1637년(인조 15)에 사망하였다. 자는 자민, 호는 동악이고,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갔다. 전쟁이 끝난 후에 병세가 악화되어 죽었다. 당시(唐詩)에 뛰어나 이태백에 비유되었다. 문집에 실린 4,379수라는 방대한 양의 시는 지역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서 민중 생활사와 사회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저서에 『동악집』 26권이 있다.
조선시대 때의 문신, 윤근수의 「주륙논란」·「한문토석」·「만록」 등을 수록한 문집.
월정별집 (月汀別集)
조선시대 때의 문신, 윤근수의 「주륙논란」·「한문토석」·「만록」 등을 수록한 문집.
이하악(李河岳)은 조선 후기에 참봉, 보은현감(報恩縣監), 금천군수(金川郡守), 충주목사(忠州牧使)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비록 문과에 급제하지는 않았지만 대동법(大同法)과 양전(量田) 등 주로 경제 정책과 관련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였다. 윤선거, 송시열 등과 친분이 있었다.
이하악 (李河岳)
이하악(李河岳)은 조선 후기에 참봉, 보은현감(報恩縣監), 금천군수(金川郡守), 충주목사(忠州牧使)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비록 문과에 급제하지는 않았지만 대동법(大同法)과 양전(量田) 등 주로 경제 정책과 관련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였다. 윤선거, 송시열 등과 친분이 있었다.
조선후기 곡산현감, 대구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윤종지 (尹宗之)
조선후기 곡산현감, 대구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정귀는 조선 시대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564년(명종 19)에 출생하여 1635년(인조 13)에 사망하였다. 자는 성징, 호는 월사, 시호는 문충이다. 유년 시절부터 남다른 문학적 자질을 보여 8세에 한유의 「남산시」를 차운했다고 한다. 중국어에 능통하여 명나라를 자주 왕래하였다. 그의 문장은 장유, 이식, 신흠과 더불어 한문 사대가로 일컬어졌다. 명나라의 양지원은 호탕하고 표일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아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고 이정귀의 문장을 평가하였다. 시문집으로 『월사집』이 전한다.
이정귀 (李廷龜)
이정귀는 조선 시대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564년(명종 19)에 출생하여 1635년(인조 13)에 사망하였다. 자는 성징, 호는 월사, 시호는 문충이다. 유년 시절부터 남다른 문학적 자질을 보여 8세에 한유의 「남산시」를 차운했다고 한다. 중국어에 능통하여 명나라를 자주 왕래하였다. 그의 문장은 장유, 이식, 신흠과 더불어 한문 사대가로 일컬어졌다. 명나라의 양지원은 호탕하고 표일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아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고 이정귀의 문장을 평가하였다. 시문집으로 『월사집』이 전한다.
조선 후기에, 대제학, 형조판서, 회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경 (趙絅)
조선 후기에, 대제학, 형조판서, 회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