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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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는 조선 후기 예문관제학,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607년(선조40)에 출생하여 1664년(현종5)에 사망했다.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자신의 정치 사상을 피력한 『강거문답』, 역사상의 예설들을 밝힌 『가례원류』, 노론 정권하의 고려사에 대한 역사관을 대변해 주는 『여사제강』을 편찬하였다.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 이유태 등과 더불어 충청도 유림의 오현(五賢)으로 일컬어졌다. 문집으로 『시남집』이 있다.
유계 (兪棨)
유계는 조선 후기 예문관제학,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607년(선조40)에 출생하여 1664년(현종5)에 사망했다.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자신의 정치 사상을 피력한 『강거문답』, 역사상의 예설들을 밝힌 『가례원류』, 노론 정권하의 고려사에 대한 역사관을 대변해 주는 『여사제강』을 편찬하였다.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 이유태 등과 더불어 충청도 유림의 오현(五賢)으로 일컬어졌다. 문집으로 『시남집』이 있다.
조선 후기에, 사재감직장, 세자익위사익위 등을 역임한 문신.
유충걸 (柳忠傑)
조선 후기에, 사재감직장, 세자익위사익위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각암집』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1605년 4월 12일 대구부 수성현(壽城縣) 파잠리(巴岑里) 집에서 출생하였다. 서인계 학자로 김장생(金長生)에게 수학하였으며, 동문인 송시열(宋時烈)·이유태(李惟泰) 등과 교유하였다. 1642년 모친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슬퍼하다가 역병에 걸려서 이듬해 정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일찍 세상을 떠나 오언고시 5수, 오언절구 6수, 오언율시 9수, 칠언절구 23수, 칠언율시 14수가 문집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잡저에 「대학집해(大學集解)」가 있는데, 팔조목을 해설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전유경 (全有慶)
조선 후기에 『각암집』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1605년 4월 12일 대구부 수성현(壽城縣) 파잠리(巴岑里) 집에서 출생하였다. 서인계 학자로 김장생(金長生)에게 수학하였으며, 동문인 송시열(宋時烈)·이유태(李惟泰) 등과 교유하였다. 1642년 모친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슬퍼하다가 역병에 걸려서 이듬해 정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일찍 세상을 떠나 오언고시 5수, 오언절구 6수, 오언율시 9수, 칠언절구 23수, 칠언율시 14수가 문집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잡저에 「대학집해(大學集解)」가 있는데, 팔조목을 해설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일제강점기 「모녀」·「춘향전」 등을 그린 화가. 한국화가.
조용승 (曺龍承)
일제강점기 「모녀」·「춘향전」 등을 그린 화가. 한국화가.
「탐구」·「화음」은 한국화가 이유태가 1944년 제작한 두 폭의 여성인물화이다. 종이 바탕에 채색으로 「탐구」는 세로 212㎝, 가로 153㎝, 「화음」은 세로 210㎝, 가로 148.5㎝이다. 두 작품은 이유태가 1944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인물화 기일 화운」, 「인물화 기이 탐구」로 함께 출품하여 특선을 수상한 작품이다. 실험실에 앉아있는 여인을 그린 「탐구」와 음악실에 앉아 있는 여인을 그린 「화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그림은 조선의 전통적인 인물화법과 신일본화의 화사한 채색화법을 결합한 신감각풍의 근대 채색인물화를 보여준다.
탐구·화음 (探究·和音)
「탐구」·「화음」은 한국화가 이유태가 1944년 제작한 두 폭의 여성인물화이다. 종이 바탕에 채색으로 「탐구」는 세로 212㎝, 가로 153㎝, 「화음」은 세로 210㎝, 가로 148.5㎝이다. 두 작품은 이유태가 1944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인물화 기일 화운」, 「인물화 기이 탐구」로 함께 출품하여 특선을 수상한 작품이다. 실험실에 앉아있는 여인을 그린 「탐구」와 음악실에 앉아 있는 여인을 그린 「화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그림은 조선의 전통적인 인물화법과 신일본화의 화사한 채색화법을 결합한 신감각풍의 근대 채색인물화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