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유계는 조선 후기 예문관제학,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607년(선조40)에 출생하여 1664년(현종5)에 사망했다.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자신의 정치 사상을 피력한 『강거문답』, 역사상의 예설들을 밝힌 『가례원류』, 노론 정권하의 고려사에 대한 역사관을 대변해 주는 『여사제강』을 편찬하였다.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 이유태 등과 더불어 충청도 유림의 오현(五賢)으로 일컬어졌다. 문집으로 『시남집』이 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예문관제학,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강거문답』, 『여사제강』 등을 저술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44년 주서로 기용되었고, 1646년 무안현감이 되었다. 1649년 인조가 죽자 홍문관부교리로서 왕의 장례 절차를 상소하여 예론에 따라 제도화하였다. 그러나 인조의 묘호를 정할 때 ‘조(祖)’자의 사용을 반대하고 ‘종(宗)’자를 주장하다가 이듬해 선왕을 욕되게 하였다는 죄로 온성과 영월에 유배되었다. 1652년(효종 3) 유배에서 풀려나 송시열 · 송준길 등의 추천으로 시강원문학으로 다시 등용되었다.
1659년 병조참지로서 비변사부제조를 겸임하고, 이어서 대사간 · 공조참의 · 대사성 · 부제학 · 부승지 등을 지냈다. 이 해에 효종이 죽고 복상 문제가 일어나자 서인으로서 기년설(朞年說)을 지지하였으며, 3년설을 주장한 윤휴(尹鑴) · 윤선도(尹善道) 등의 남인을 논박하여 유배 또는 좌천시켰다. 1662년(현종 3) 예문관제학을 거쳐 1663년 대사헌 · 이조참판에 올랐다가 병으로 사직하였다.
학문세계와 저서
또한 주자의 『가례』를 기본으로 하고, 『의례(儀禮)』 · 『주례(周禮)』 · 『대례(戴禮)』 등 여러 경전의 내용을 뽑고 주를 붙여 ‘원(源)’이라 하며, 후대의 여러 유학자들의 예설을 조사하여 ‘유(流)’라 하여 역사상의 예설들을 밝힌 『가례원류(家禮源流)』를 편찬하였다. 이는 김장생의 예설에 토대를 둔 것이며, 훗날 윤선거와 공편했는지를 두고 노론과 소론 사이에 치열한 당쟁을 불러일으켰다.
말년에는 주자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본받아 노론 정권하의 고려사에 대한 역사관을 대변해 주는 강목체(綱目體)의 『여사제강(麗史提綱)』을 편찬하였다. 그 밖의 저서로는 문집인 『시남집(市南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시남집(市南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전고문헌(典攷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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