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시강원진선, 동부승지,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 시호문헌(文憲)
  • 초려(草廬)
  • 태지(泰之)
인물/전통 인물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684년(숙종 1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희릉참봉|대군사부|지평|집의|공조참의|이조참의|우부승지|이조참판
  • 출생 연도1607년(선조 4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만조 (국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5월 28일
초려문집 미디어 정보

초려문집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시강원진선, 동부승지,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 아버지는 유학 이서(李曙)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김집(金集)의 천거로 1634년(인조 12)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고 이어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 · 대군사부에 임명되었지만 나가지 않았다.

1658년(효종 9) 송시열(宋時烈) · 송준길(宋浚吉)의 천거로 지평이 되고, 이듬해 시강원진선 · 집의를 거쳐 현종 즉위 후 공조참의 · 동부승지를 역임하였다.

1660년(현종 1) 복제시비호군으로 있으면서 송시열의 기년설(朞年說)을 옹호하였다. 뒤이어 효종 말년 이래 적어두었던 만언소(萬言疏)를 올려 시폐(時弊)를 논하고 구민(救民) · 구국(救國)의 대책을 제시, 왕이 비변사로 하여금 검토하게 했으나 제대로 채택되지 않자 실망해 사직, 귀향하였다. 그 뒤에도 이조참의 · 동부승지 · 우부승지 · 이조참판 등이 제수되었지만 취임하지 않았다.

1674년의 갑인예송(甲寅禮訟) 때 복제를 잘못 정했다는 남인 윤휴(尹鑴) 등의 탄핵을 받아 다음 해 영변에 유배되었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죄가 풀려 호군에 서용되었으나 숙종 초부터 사이가 벌어진 송시열과 그 계통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유현(儒賢)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채 불만 끝에 죽었다.

예학(禮學)에 뛰어나 김집과 함께 『상례비요(喪禮備要)』 · 『의례문해(疑禮問解)』 등을 교감(校勘)했으며, 특히 치국경제(治國經濟)의 문제에서는 이이(李珥)를 모범으로 삼아 점진적인 경장론을 전개하였다.

즉, 우선 당시 민폐와 국정 동요의 근본 요인이 농민의 유리와 토지의 황폐에 있다고 보고 안정책으로 향약에 의한 향촌조직과 오가작통제(五家作統制)의 실시, 양전(量田) 시행과 사창(社倉) 설치를 주장하고, 양인(良人) 이상 자제의 취학과 15세 이후 능력에 따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선택을 역설하였다.

구체적인 변통책으로서는 어염세(魚鹽稅)의 국고 전환과 면세전의 폐지, 내수사의 혁파, 부세(賦稅) 및 인역제(人役制)의 개혁, 공안(貢案)의 조정과 감축, 양전제의 개선, 관제의 개편과 합리적 운영방안 등을 제시하였다.

본래 한미한 출신으로서 처음에는 민재문(閔在汶)에게 배우다가 김장생(金長生) · 김집 부자를 사사, 그 문하의 송시열 · 송준길 · 윤선거(尹宣擧) · 유계(兪棨)와 더불어 호서산림 오현(五賢)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소론에 의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문인들이 고향에 금산서원(錦山書院)을 세워 제향했다가 1713년 노론 때문에 일시 훼철되기도 하였다. 저서로 『초려집』 26권이 전한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당의통략(黨議通略)』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