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이유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5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내용
「기해봉사(己亥封事)」는 1660년(현종 1) 5월 명을 받아 봉진(奉進)한다는 주가 붙어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는 여기에서 재이(災異)가 자주 일어나는 원인과 미재(弭災)의 도(道)를 논술하고, 현재 선치(善治)에 대한 실효가 나타나지 않는 까닭으로 상무구치지실(上無求治之實)·하무임사지실(下無任事之實)·경연무강도지실(經筵無講道之實)·학교무조사지실(學校無造事之實)·군책무구민지실(群策無救民之實)·인심무향선지실(人心無向善之實)·조정무교령지실(朝廷亡敎令之實) 등 7가지를 지적하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실책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광구책(匡救策)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경제정책 및 풍속·제도 등의 광범위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당시의 폐정(弊政)과 선치에 대한 방도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정치적인 역량과 사상을 알기에 충분한 자료다.
여러 차례의 「응지소(應旨疏)」는 모두 재난을 당했을 때 임금의 하문(下問)에 답한 것이다. 재난을 관찰하는 그의 관점과 그에 대처할 방도를 제시한 것에서, 당시의 행정 및 경제 등에 대한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헌의 가운데 「자의전복제추정당부의(慈懿殿服制追正當否議)」는 현종 때 복상문제로 시끄러운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복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밝힌 글이다. 「소학언해이정의(小學諺解釐正議)」는 『소학언해』에 관한 이정문제(釐正問題)를 논의한 것으로, 그의 학문에 대한 깊이를 엿볼 수 있다.
「예변(禮辨)」은 저자의 행장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글이다. 예송문제에 관한 직접적이며 구체적인 사료(史料)로서, 내용은 경자설(庚子說)·갑인설(甲寅說)·병진설(丙辰說)·가소제이장자입지역명장자변(賈疏第二長者立之亦名長子辨)·가소제일자사변(賈疏第一子死辨)·종여적불가분설(宗與適不可分說)·서자입위적자이미개중계지명설(庶子立爲適子而未改仲季之名說) 등이다.
「의례문답」의 전편은 저자가 스승인 김장생(金長生)에게 각종 예경(禮經) 및 『통전(通典)』 등에 있는 의례(疑禮)에 대해 물은 것으로서, 문목형식(問目形式)으로 저자의 질문에 대한 스승의 답을 붙여 놓았다. 저자의 예학에 대한 깊이를 알 수 있고 예학 연구에도 훌륭한 자료다. 후편 역시 의례에 관한 제공(諸公)의 문의에 대해 저자가 답한 것으로, 두 가지 모두 20여 조목이 나열되어 있다.
서(書)는 주로 사우간에 시사(時事)에 대해 토론하고 예설에 대해 개진한 내용이 많다. 특히, 송시열(宋時烈)과의 편지에는 예송에 대한 토론이 들어 있어서 「예변」과 함께 그의 예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역설」은 『역경』과 관련된 각종 문제점을 저자 자신이 추출한 뒤, 선유(先儒)의 설을 인용해 밝히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해 놓은 것이다. 내용은 「건이곤간설(乾易坤簡說)」·「도근구원서(道近求遠書)」·「삼이원장설(三二圓章說)」 등 9조목이다.
별집에는 본집에서 빠진 편지와 「예설문목(禮說問目)」 등이 들어 있다. 또한, 부록 끝에는 미간서(未刊書)의 서목(書目)과 화재로 유실된 편목 등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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