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제강 ()

여사제강
여사제강
고려시대사
문헌
조선후기 학자 유계가 고려사에 관하여 저술한 역사서.
정의
조선후기 학자 유계가 고려사에 관하여 저술한 역사서.
개설

23권 23책. 인본. 유계가 만년에 지어 1667년(현종 8)에 간행되었다. 1973년에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 · 출판하였다.

책머리에는 여사제강 서 · 여사제강 범례 · 여사제강 목록 · 여사제강 찬집제서(纂輯諸書)가 수록되어 있고, 태조기(太祖紀)에서 주1까지 실려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의 저술 동기와 역사, 서술 태도 등은 여사제강 범례에 잘 나타나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는 이미 간행된 『삼국사기』 · 『고려사』 · 『동사찬요(東史簒要)』 · 『동국통감』 등의 기사 내용과 체재, 그리고 사체(史體)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그는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는 그 내용이 허황되고 터무니없어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고려사』는 역대 전사(全史)의 체를 모방한 결과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세가(世家) · 지(志) · 열전에 산재해 있어서, 비록 한 권의 책이지만 실제로는 세 권과 같아 내용파악이 곤란하다고 지적하였다. 게다가 그 주2이 아주 많아 절반도 보지 않아 곧 싫증이 난다고 하였다.

『동사찬요』는 주3로 간략하게 찬집했으나, 따로 열전을 두어 실제로는 두 권과 같기 때문에 참고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하였다. 『동국통감』은 비록 한데 묶여져 있기는 하지만, 강(綱) · 목(目)의 구별과 주4의 차례가 없어서 읽는 사람이 그 강요(綱要)를 알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성리학자였던 저자는 우리나라 사서에 이미 학문적 불만을 느껴 강목체로 간략한 사서를 저술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가 고려사만을 택한 것은 그 이전의 역사적 기록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이성계(李成桂)창왕강화로 내쫓고 정창군 주5를 옹립한 뒤 시중(侍中)이 되는 데에서 끝나고 있다. 이것은 고려왕조의 전체 역사를 다룬 사서로서는 불완전한 것이다.

고려 왕조의 멸망과 조선 왕조의 성립 과정에 대한 서술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빠진 이유는 저자의 확고한 역사적 안목과 판단이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고려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사료로서의 가치는 없다. 왜냐하면 『고려사』 등에 실려 있지 않은 새로운 사료는 한 구절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 학자로서 우리 역사를 서술하면서 우리 역사의 주체성을 살리고자 한 노력은 주목된다. 그는 우리나라의 주6 아래 중국연호를 달아놓았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비록 해마다 중국의 정월 초하루를 받들고 있으나, 이 책은 곧 우리나라의 역사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고려시대에 종(宗)이라 칭하고 폐하 · 태후 · 태자 · 절일(節日) · 조(詔) · 제(制) 등의 명칭이 비록 주7하기는 하나, 당시 칭하던 바를 그대로 쓰기로 한다는 융통성을 보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주석
주1

辛昌은 昌王임

주2

책을 낱개로 세는 단위인 권과 여러 책으로 된 한 벌을 세는 단위인 질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역사 서술 체제의 하나. 역사적 사실을 연대순으로 기록하는 기술 방법이다. 우리말샘

주4

연대순으로 역사를 편찬함. 우리말샘

주5

공양왕

주6

일정한 기원으로부터 계산한 햇수. 우리말샘

주7

분수에 넘쳐 너무 지나침.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4)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