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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임석제 예술사진개인전'은 1948년, 해방 후 국내에서 열린 첫 사진 개인전이자, 처음으로 사회주의리얼리즘이라는 사진 형식을 선보인 사진전이다. 부두 노동자, 소작농 등 노동자와 농민을 주로 촬영했으며, 그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과 확연히 구분되는 사진을 처음 시도했다는 점에서 선구적 전시로 평가받는다.
제1회임석제예술사진개인전 (林奭濟第1回藝術寫眞個人展)
'제1회 임석제 예술사진개인전'은 1948년, 해방 후 국내에서 열린 첫 사진 개인전이자, 처음으로 사회주의리얼리즘이라는 사진 형식을 선보인 사진전이다. 부두 노동자, 소작농 등 노동자와 농민을 주로 촬영했으며, 그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과 확연히 구분되는 사진을 처음 시도했다는 점에서 선구적 전시로 평가받는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는 1937년경 박영진을 초대 회장으로 서울의 아마추어 사진가 23명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전쟁으로 인해 사진 활동이 원활하지 않던 1943년 해산했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는 한국인만으로 결성된 단체로서 민족 정신을 바탕으로 일본인 사진인들에 대항하고자 한다는 사진 단체 결성의 의지를 다지는 한편 사진예술 발전을 도모하며 회원들의 이론 및 실기 향상을 위해 활발한 사진활동을 이어나갔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 (京城―寫眞俱樂部)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는 1937년경 박영진을 초대 회장으로 서울의 아마추어 사진가 23명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전쟁으로 인해 사진 활동이 원활하지 않던 1943년 해산했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는 한국인만으로 결성된 단체로서 민족 정신을 바탕으로 일본인 사진인들에 대항하고자 한다는 사진 단체 결성의 의지를 다지는 한편 사진예술 발전을 도모하며 회원들의 이론 및 실기 향상을 위해 활발한 사진활동을 이어나갔다.
조선사진건설위원회는 1945년 8월 박필호가 중심이 되어 신문화건설운동에 가담하고 한국사진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목적으로 결성한 사진 단체이다. 해방 직후 최초로 조직된 사진 단체로서 일반적인 사진 활동뿐만 아니라 교육, 영업, 화학, 기술 등 사진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활동 목표를 갖고 활동을 했다.
조선사진건설위원회 (朝鮮寫眞建設委員會)
조선사진건설위원회는 1945년 8월 박필호가 중심이 되어 신문화건설운동에 가담하고 한국사진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목적으로 결성한 사진 단체이다. 해방 직후 최초로 조직된 사진 단체로서 일반적인 사진 활동뿐만 아니라 교육, 영업, 화학, 기술 등 사진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활동 목표를 갖고 활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