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의 문화정책하에 활동에 제약을 받던 사진 단체들은 해방과 더불어 활기를 되찾고 새로운 창작 욕구를 북돋우며 여러 종류의 사진 단체들을 조직하였다. 그 중 조선사진건설위원회는 해방 직후 최초로 조직된 사진 단체로서 1945년 8월 박필호(朴弼浩)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단체이다. 해방과 함께 신문화건설운동에 가담하며 한국사진의 미래를 준비하고자 사진인의 역량 결집을 목표로 결성하였고, 일반적인 사진 활동뿐만 아니라 교육, 영업, 화학, 기술 등 사진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활동 목표를 갖고 있었다.
조선사진건설위원회는 1945년 11월 연합군환영사진전람회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창립회원이었던 김정래(金貞來)가 남긴 기념사진은 이 전시에 관한 몇 가지 정보를 전해 준다. 김정래가 참여한 이 전람회는 해방군으로 서울에 입성한 연합군의 모습과 이를 환영하는 모습을 촬영한 위원회 소속 사진가들의 사진으로 구성되었다. 작품 목록은 구체적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다른 기록물을 통해 김정래를 비롯하여 현일영, 최희연, 백운선, 임석제 등이 이 전시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군환영사진전람회는 공식적으로 해방 후 이 땅에서 열린 첫 사진 전시회였고, 이는 조선사진건설위원회의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다.
조선사진건설위원회는 『자유신문(自由新聞)』이 주최한 해방기념사진전의 후원을 맡았다. 건국의 내용과 조선적인 정서를 담을 것을 요구하는 공모전 형식으로 치러진 이 전시회는 해방 후 신문사가 주도한 첫 사진 공모전 행사였다. 원래 1946년 3·1절 기념으로 기획했으나 실제로는 5월 6일 동방무역주식회사 전시장에서 전시가 개막되었다. 당시 최우수상이라 할 수 있는 ‘추천 1석’에 김진수(金珍洙)의 「전위대」, ‘추천 2석’에 이동호(李東浩)의 「독립의 제1보」, ‘특선 갑’에 이명동(李命同)의 「해방과 풍년」, ‘특선 을’에 홍용장(洪容章)의 「해방」, ‘특선 병’에 정도선(鄭道善)의 「태극기」가 선정되어 전시회를 통해 소개되었다.
조선사진건설위원회는 주도 세력이 좌익, 우익 등 이념적으로 분화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조선의 통합 정부 구성을 염원하는 순수성을 갖고 있었다. 김진수와 같은 좌익 계열 사진가와 이명동과 같은 우익 계열 사진가가 같이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방 후 발 빠르게 사진 관계자들을 모아 세력화를 시도했던 조선사진건설위원회는 이념과 장르에 따라 사진인들의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면서 1946년에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