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권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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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호는 해방 이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법조원로원 회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1918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1952년 제1회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했다. 1964년 3.24 데모로 구속된 김중태의 무료 변론을 시작으로 구속 학생들의 변론과 석방 서명운동 등을 펼쳤다. 서울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법조원로회 회장, 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았다. 법체계의 민주화 작업, 인권 문제 해결, 인권위원회의 활동 등 각종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6년 사망할 때까지 줄곧 인권 변호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명덕상,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김은호 (金殷鎬)
김은호는 해방 이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법조원로원 회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1918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1952년 제1회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했다. 1964년 3.24 데모로 구속된 김중태의 무료 변론을 시작으로 구속 학생들의 변론과 석방 서명운동 등을 펼쳤다. 서울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법조원로회 회장, 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았다. 법체계의 민주화 작업, 인권 문제 해결, 인권위원회의 활동 등 각종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6년 사망할 때까지 줄곧 인권 변호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명덕상,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노무현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다.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여 제13대, 제15대 국회의원직, 김대중 정부에서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지냈다. 대통령 취임 후 '참여정부'로 명명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 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추구하였다.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 등 국익 중심 외교통상 정책을 펼쳤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
노무현 (盧武鉉)
노무현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다.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여 제13대, 제15대 국회의원직, 김대중 정부에서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지냈다. 대통령 취임 후 '참여정부'로 명명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 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추구하였다.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 등 국익 중심 외교통상 정책을 펼쳤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
조영래는 대한민국의 인권변호사로, 『전태일평전』의 집필자이자 1980년대 노동·여성·환경 관련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인물이다.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1년 6개월간 복역하고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6년간 도피 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83년 시민공익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망원동 수재집단의 소송사건, 이경숙사건(여성조기정년제 철폐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상봉동 진폐소송사건 등을 맡았다.
조영래 (趙英來)
조영래는 대한민국의 인권변호사로, 『전태일평전』의 집필자이자 1980년대 노동·여성·환경 관련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인물이다.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1년 6개월간 복역하고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6년간 도피 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83년 시민공익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망원동 수재집단의 소송사건, 이경숙사건(여성조기정년제 철폐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상봉동 진폐소송사건 등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