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입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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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산성(天生山城)은 천생산 정상 주위에 돌출한 암반을 따라 축조된 석축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혁거세가 성을 축조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사실로 보기 어렵다. 성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이나 『경상도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를 참고하면 이 산성은 고려시대에 입보용으로 축조되어 조선 전기까지 이용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산성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어 찰리사 곽재우가 건의하여 외성을 쌓았다.
천생산성 (天生山城)
『천생산성(天生山城)은 천생산 정상 주위에 돌출한 암반을 따라 축조된 석축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혁거세가 성을 축조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사실로 보기 어렵다. 성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이나 『경상도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를 참고하면 이 산성은 고려시대에 입보용으로 축조되어 조선 전기까지 이용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산성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어 찰리사 곽재우가 건의하여 외성을 쌓았다.
창녕 화왕산성(昌寧 火旺山城)은 5세기 경 창녕을 조망할 수 있는 서쪽에 만들어진 토축 산성을 통일신라시대에 석축으로 개축한 석축 산성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잦은 외적의 침입을 겪던 창녕과 현풍 지역민을 보호하던 입보 산성이기도 하다. 초축된 화왕산성의 둘레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현재 남아 있는 화왕산성의 둘레는 고려 말~조선시대 전기에 정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 조씨 득성지로 알려진 집수지에서는 용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흔적이 확인되어 진산에 만든 성을 제사처로 활용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창녕 화왕산성 (昌寧 火旺山城)
창녕 화왕산성(昌寧 火旺山城)은 5세기 경 창녕을 조망할 수 있는 서쪽에 만들어진 토축 산성을 통일신라시대에 석축으로 개축한 석축 산성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잦은 외적의 침입을 겪던 창녕과 현풍 지역민을 보호하던 입보 산성이기도 하다. 초축된 화왕산성의 둘레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현재 남아 있는 화왕산성의 둘레는 고려 말~조선시대 전기에 정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 조씨 득성지로 알려진 집수지에서는 용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흔적이 확인되어 진산에 만든 성을 제사처로 활용했던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