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61,874㎡. 신라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처음 쌓고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가 왜적을 맞아 싸웠다고 전해오는 이 산성은 현재 칠곡군과 연접되어 있다.
3면이 절벽을 이루어 험준하며 동서쪽만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이 동서면에 남북으로 약 1㎞의 자연할석(自然割石)으로 석벽을 축조한 천연의 요새이다.
성 안에는 우물 하나와 연못 두 곳이 있으며, 동·남·북의 3개 문지 중 남문지는 붕괴되었고 북문 또한 일부가 붕괴되었으나 동문지는 원형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남아 있다.
이 성과 이웃한 금오산성(金烏山城)이나 가산산성(架山山城)과 더불어 의각(犄角 : 앞뒤에서 적을 몰아침)의 형세를 이루어 옛 인동현의 읍민을 난리로부터 보호하여왔던 곳이다.
성벽과 성문지는 임진왜란 후 그 중요성이 다시 인정되어 1596년(선조 29) 인동현감 이보(李甫)에 의하여 수축되었고, 1601년과 1604년에도 관찰사 이시발(李時發)과 찰리사(察理使) 곽재우에 의하여 수축된 것이다. 삼국 시대의 산성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삼국 시대 고분군과 이웃하고 있어 삼국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안에는 장대(將臺)·군기고(軍器庫)를 비롯하여 만지암(萬持庵)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성벽·동문·당간지주 등만 남아 있다. 조선 시대에는 별장(別將)이 배치되어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던 유서 깊은 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