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용된 입보용 산성.
위치와 기록
건립 경위
조선 전기 『지리서』에 의하면 천생산성은 둘레 1,947척, 높이는 때로는 7~8척 때로는 4~5척이고, 내부에는 우물 1기, 못 2기가 있다고 하였다. 외성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1601년(선조 34)에 곽재우가 찰리사로 계문하여 쌓았는데 당시 성의 둘레가 3,612척이라고 하였다. 이 기록을 보면 천생산성은 원래 내성만 있었다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외성을 축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굴경위 및 결과
천생산성 내성의 암문에 대한 조사 결과, 배수로가 폐기된 이후 수리 · 증축하여 암문을 설치한 것이 확인되었다. 배수로에서는 15세기 이전의 암키와가, 계단 통로에서는 어골문 기와편과 조선 중기 백자편이 출토되어 시기 차를 보여준다. 특히 성벽 안쪽 상부에서 수습된 기와 가운데 사절흔(砂切痕)이 관찰되는 고려시대 어골문계와 격자복합문이 확인되었다. 이는 고려시대에도 천생산성을 이용하였다는 증거로, 『경상도지리지』의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개축의 흔적과 유물이 보여주는 시기 차는 천생산성의 초축 연대가 적어도 고려시대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편, 조선 초기의 수리와 증축, 임진왜란 후 조선 후기까지 별장과 승장이 배치된 것을 통해 산성을 사용했던 시기를 알 수 있다.
형태와 특징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慶尙道地理志』
- 『世宗實錄地理志』
- 『慶尙道續撰地理誌』
- 『新增東國輿地勝覽』
- 『輿地圖書』
- 『大東地志』
단행본
- 대구대학교박물관, 『선산 천생산성 지표조사보고서』(1993)
- 구미시 · 동국문화재연구원, 『구미 천생산성 암문지』(201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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