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평기와·바닥기와·여와(女瓦)·자와(雌瓦)라고 부른다. 흙으로 구워 만든 큰 원통을 세로로 3등분 또는 4등분한 것으로, 좌우측이 중심보다 치켜 올라가 약간 휜 모습으로 수키와 밑에 놓여 기왓골을 형성하기 때문에 눈과 빗물을 차단하여 그 흐름을 돕고 있다.
형태에 따라 하단부의 안쪽에 언강이라고 부르는 낮은 턱을 만들어, 두 암키와의 끝을 연접(連接)시키기 위한 물림자리인 짧은 미구가 내밀고 있는 유단식(有段式)과, 언강과 미구가 생략되고 있는 무단식(無段式)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유단식은 고신라시대 말기에 출현하여 잠시동안 사용되다가 곧바로 사라졌고, 무단식은 삼국시대 초기부터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에서 각각 제작되기 시작하여 성행하게 되었는데, 통일신라시대 이후 고려·조선시대까지 그 전통이 계승되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와이다.
암키와는 보통 짧고 긴 나무판자를 둥그렇게 끈으로 엮거나 지름이 큰 통나무를 알맞게 절단하여 만든, 나무로 된 제작틀인 모골(模骨)을 회전대 위에 올려놓고 삼베를 씌운 다음, 네모난 점토판을 그 바깥쪽에 둥그렇게 돌려 붙여 무늬나 문자가 새겨진 방망이[叩板]로 두들겨 성형하게 되는데, 이것을 날기와[生瓦]라고 한다.
날기와는 수키와와 같이 10여일 동안 그늘에서 건조시켜 습기를 없앤 뒤 세로로 3등분 또는 4등분한 다음 경사가 많은 가마에 넣고 1,000°내외의 높은 온도로 구워서 제작한다. 그러나 때로는 날기와를 제작할 때 중심보다 좌우측이 약간 휜 나무판을 이용하여 1매씩 제작하는 방법도 확인되고 있으나 거의 드물다.
고구려와 신라의 암키와는 그 안쪽에 모골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지름이 큰 통나무를 제작틀로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백제의 암키와는 그 안쪽에 짧고 긴 나무판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암키와를 제작할 때 서로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암키와는 성형할 때 점토를 다지기 위하여 여러 가지 무늬나 문자가 새겨진 방망이로 그 외벽을 두들겨 제작하므로 그 겉면에는 수키와와 같이 돛자리무늬[繩蓆文], 평행선과 격자(格子) 모양의 선무늬, 선과 곡선이 서로 밀집되어 조합된 기하학무늬 등과 꽃무늬, 그리고 절 이름이나 궁궐의 이름, 제작소의 표시, 간지와 제작 연대 등의 문자가 찍혀져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절이나 궁궐의 이름, 제작소 등이 표시되어 있는 기와는 가마와 사용처와의 수요와 공급 관계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고, 간지와 제작 연대가 찍힌 기와는 기와의 편년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그리고 안쪽에는 삼베의 흔적인 포목흔(布目痕)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