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진례산성 ( )

창원 진례산성
창원 진례산성
건축
유적
문화재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포곡식 석축 성곽. 산성.
이칭
이칭
창원 비음산성
유적
건립 시기
조선시대
관련 국가
조선
높이
3m
둘레
4.5km
면적
806,234㎡
소재지
창원시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경상남도 시도기념물(1993년 12월 27일 지정)
소재지
경남 창원시 성산구
내용 요약

창원 진례산성은 비음산(해발 : 518.8m)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 조선시대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남쪽으로는 진해만, 동쪽으로는 김해시 진례면 송현리 일부, 부산 사상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산성의 둘레가 약 4.5㎞를 상회하는 대형의 성이다. 체성은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성 내외의 경사도가 큰 곳은 편축으로, 경사도가 작은 곳은 협축으로 축조하였다.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포곡식 석축 성곽. 산성.
발굴 경위 및 결과

창원 진례산성은 둘레가 약 4.5㎞를 상회하는 대형의 성이다.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었지만 성의 남쪽 구간은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다. 체성은 자연 지세를 최대한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성 내외의 경사도가 큰 곳은 편축으로, 경사도가 작은 곳은 주9으로 축조하였다. 체성의 동쪽은 자연 암반에 덧대어 쌓아 자연 지형을 이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추정된다. 내벽은 암반층을 정지하고 10㎝ 내외의 작은돌과 주12를 혼합하여 다진 다음 깬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렸고 폭은 100~120㎝이다. 체성의 폭은 210㎝ 정도이며 외벽은 내벽과 같이 암반 위에 축조하였다. 남문지는 비음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문지는 체성에 덧대어 쌓았고 폭은 320cm 정도이다. 문지는 주14을 이용하여 기초 다짐을 하였기 때문에 많은 양의 와편들이 수습되었는데, 와편들은 주16주17가 주류를 이룬다. 와편에는 주20, 주19, 삼각집선문, 격자문, 복합문 등이 시문되어 있고 「봉림사(鳳林寺)」 명(銘) 기와도 확인되었는데, 두께나 색조, 주18 등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파수와 상평통보, 조선시대의 도기 편들이 주1

형태와 특징

이와 같이 진례산성에서 보이는 세석 다짐을 한 뒤 주21을 설치하는 것이나 대석을 놓고 그 주위를 작은 깬돌로 쌓는 수법은 주2, 주3, 거제 주4 등과 같은 조선시대 읍성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축성 수법이다. 출토 유물도 조선시대의 기와와 상평통보가 출토되어 창원 진례산성은 조선시대 들어 축조되어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문지에서 발견된 「봉림사」명 기와는 봉림사가 폐사된 후 가져왔을 주5 축조 수법이나 출토 유물로 보아 창원 진례산성은 봉림사가 폐기되고 난 이후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창원 지역의 입보성으로 축조되었고 상평통보가 통용되던 후기까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및 평가

창원 진례산성은 4.5km가 넘는 둘레나 축조 수법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이 분명하고 선대의 유구도 확인되지 않아 기록에 보이는 신라 하대의 진례성으로 볼 수 없다. 실제로 창원 진례산성의 위치를 살펴보면 진례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왜적이 창원으로 진입하는 진해만을 바라보고 있어 주된 방어공간은 창원이라고 할 수 있다.

창원 진례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진례산성을 신라 하대의 진례성으로 본 주6 비판 없이 수용하여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하였고 측량 결과 창원에 속하는 것으로 판명되어 붙은 이름이다. 이와 같이 창원 진례산성은 『삼국사기』『고려사』에 기록된 통일신라시대의 진례성은 아닌 것이 주7 창원 진례산성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현재 성이 위치한 비음산의 이름을 따라 창원 비음산성이라고 불러야 할 주8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단행본

구산우, 김주용, 『경남 창원진례산성』(창원대학교, 2011)

논문

金侖禹, 「新羅末의 仇史城과 進禮城考 -歷史地理的 考察을 中心으로- 」(『사학지』 22, 단국대학교 사학회, 1989)
정의도, 「진례성의 고고학적 연구」(『한국성곽학보』 18, 한국성곽학회, 2010)
주석
주1

경남문화재연구원, 2003, 창원 진례산성, 학술조사연구총서 제19집.

주2

진해시·경남발전연구원, 『웅천읍성』 조사보고연구서 제1책, 2001, 『웅천읍성Ⅱ』 조사보고연구서 제81책, 2010.

주3

경남문화재연구원, 『김해읍성 북문지』 학술조사연구총서 제76책, 2009.

주4

동아대학교박물관, 『거제고현성지』 고적조사보고서 제18책, 1991,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고현읍성』 조사연구보고서 제42책, 2006.

주5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2000, 창원봉림사지

주6

金侖禹, 「新羅末의 仇史城과 進禮城考」 -歷史地理的 考察을 中心으로- 사학지 22. 단국대학교 사학회, 1989

주7

『三國史記』 新羅 景明王本紀 「四年(920년) 冬十月 後百濟王甄萱 率步騎一萬 攻陷大耶城 進軍於進禮 王遣阿湌金律 救援於太祖 太祖命將出師求之 萱聞乃去」

주8

정의도, 「진례성의 고고학적 연구」, 『한국성곽학보』 제18집, 한국성곽학회, 2010.

주9

성을 쌓을 때,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을 쌓는 일. 우리말샘

주10

땅속의 암반으로 된 층. 우리말샘

주11

조그마한 돌. 우리말샘

주12

20% 이상의 부식질을 포함한 짙은 갈색의 비옥한 흙. 우리말샘

주13

구조물의 기초에 쓰이는 깬돌. 1개의 중량이 10~100kg로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말샘

주14

깨어진 기와 조각. 우리말샘

주16

두 암키와 사이를 엎어 잇는 기와. 속이 빈 원기둥을 세로로 반을 쪼갠 모양이다. 우리말샘

주17

지붕의 고랑이 되도록 젖혀 놓는 기와. 바닥에 깔 수 있게 크고 넓게 만든다. 우리말샘

주18

질그릇이나 도자기의 밑감이 되는 흙. 우리말샘

주19

물고기 뼈 모양과 같이 빗금들이 엇갈리게 겹쳐 나간 무늬. 빗살무늬 토기 가운데 많이 나타난다. 우리말샘

주20

표면에 그리거나 새긴 무늬가 없음. 우리말샘

주21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우리말샘

주22

구조물의 기초에 쓰이는 깬돌. 1개의 중량이 10~100kg로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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