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포곡식 석축 성곽. 산성.
발굴 경위 및 결과
형태와 특징
의의 및 평가
창원 진례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진례산성을 신라 하대의 진례성으로 본 것을 비판 없이 수용하여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하였고 측량 결과 창원에 속하는 것으로 판명되어 붙은 이름이다. 이와 같이 창원 진례산성은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기록된 통일신라시대의 진례성은 아닌 것이 분명하므로 창원 진례산성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현재 성이 위치한 비음산의 이름을 따라 창원 비음산성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원전
- 『삼국사기』
- 『고려사』
- 『신증동국여지승람』
단행본
- 구산우, 김주용, 『경남 창원진례산성』(창원대학교, 2011)
논문
- 金侖禹, 「新羅末의 仇史城과 進禮城考 -歷史地理的 考察을 中心으로- 」(『사학지』 22, 단국대학교 사학회, 1989)
- 정의도, 「진례성의 고고학적 연구」(『한국성곽학보』 18, 한국성곽학회, 201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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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경남문화재연구원, 2003, 창원 진례산성, 학술조사연구총서 제19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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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진해시·경남발전연구원, 『웅천읍성』 조사보고연구서 제1책, 2001, 『웅천읍성Ⅱ』 조사보고연구서 제81책,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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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경남문화재연구원, 『김해읍성 북문지』 학술조사연구총서 제76책,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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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동아대학교박물관, 『거제고현성지』 고적조사보고서 제18책, 1991,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고현읍성』 조사연구보고서 제42책,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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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2000, 창원봉림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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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金侖禹, 「新羅末의 仇史城과 進禮城考」 -歷史地理的 考察을 中心으로- 사학지 22. 단국대학교 사학회,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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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三國史記』 新羅 景明王本紀 「四年(920년) 冬十月 後百濟王甄萱 率步騎一萬 攻陷大耶城 進軍於進禮 王遣阿湌金律 救援於太祖 太祖命將出師求之 萱聞乃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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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정의도, 「진례성의 고고학적 연구」, 『한국성곽학보』 제18집, 한국성곽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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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성을 쌓을 때,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을 쌓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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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땅속의 암반으로 된 층.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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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조그마한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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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20% 이상의 부식질을 포함한 짙은 갈색의 비옥한 흙.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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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구조물의 기초에 쓰이는 깬돌. 1개의 중량이 10~100kg로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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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깨어진 기와 조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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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6
: 두 암키와 사이를 엎어 잇는 기와. 속이 빈 원기둥을 세로로 반을 쪼갠 모양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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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7
: 지붕의 고랑이 되도록 젖혀 놓는 기와. 바닥에 깔 수 있게 크고 넓게 만든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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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8
: 질그릇이나 도자기의 밑감이 되는 흙.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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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9
: 물고기 뼈 모양과 같이 빗금들이 엇갈리게 겹쳐 나간 무늬. 빗살무늬 토기 가운데 많이 나타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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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0
: 표면에 그리거나 새긴 무늬가 없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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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1
: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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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2
: 구조물의 기초에 쓰이는 깬돌. 1개의 중량이 10~100kg로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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