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삼국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조선 후기 거제부사 송희승이 수리 · 증축한 석축 산성.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유적의 위치
거제 옥산성은 『여지집성(輿地集成)』 「거제군읍지」와 19세기 고지도에 수정산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산성 내부에 건립된 축성비에는 '옥산금성이 1873년(고종 10)에 축성되었다'라고 적혀 있다. 성을 축성한 시기는 일치하지만 성의 이름은 다르게 기재되어 있다.
발굴 경위 및 결과
거제 옥산성 2기의 집수지 중 집수지 1은 삼국시대에 초축된 것으로 조선 후기에 재사용되었는데, 3단의 계단식 호안 석축 구조로 되어 있다. 집수지 1의 규모는 직경 14m, 깊이 4.5m이며, 집수지 외부에 점토와 석재로 지정하였다. 집수지 바닥에서는 건륭통보와 상평통보를 비롯하여 분청사기 접시, 백자 등 조선시대 유물과 7세기 전반 경의 단각고배, 대부완 등도 출토되어 산성의 대체적인 운영 시기를 보여준다.
집수지 2는 건물지 1의 하부에서 확인되었다. 내부에 몽돌과 토사가 가득 채워져 있어 상부에 건물을 조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이 집수지를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 집수지 2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도기편과 기와편이 출토되어 이 집수지가 집수지1 보다 늦게 조성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유적의 내부 구조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가야문물연구원, 『거제 옥산성 4호 건물지』(2022)
- 경상문화재연구원, 『거제옥산성지』(2019)
- 동서문물연구원, 『거제 옥산성 동문지 발굴(정밀)조사 약식 보고서』(2022)
- 동아세문화재연구원, 『거제 옥산성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정밀발굴조사 약식 보고서』(2021)
- 두류문화연구원, 『거제 옥산성 8호건물지 일원 발굴(시굴)조사 자문회의 자료』(2022)
- 삼강문화재연구원, 『거제 옥산성 1호 건물지』(2021)
- 삼도문화재연구원, 『거제 옥산성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문화재 발굴조사 약보고서』(202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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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건축 공사에서 벽이나 천장, 바닥 따위에 흙이나 회, 시멘트 따위를 바름. 또는 그런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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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그곳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으로 정하여 제사하던 산. 조선 시대에는 동쪽의 금강산, 남쪽의 지리산, 서쪽의 묘향산, 북쪽의 백두산, 중심의 삼각산을 오악(五嶽)이라고 하여 주산으로 삼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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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마치 띠를 두르듯 산 정상부를 빙 둘러 가며 쌓아 올린 산성.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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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보(堡) 안에 들어와 보호를 받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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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중국 청나라 목종 때의 연호(1862~1874).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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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강이나 바다의 기슭이나 둑 따위가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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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집터 따위의 바닥을 단단히 하려고 박는 통나무 토막이나 콘크리트 기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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