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청도읍성(淸道邑城)은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평지 석축 읍성이다. 임진왜란 직전에 만들어졌다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수리하면서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성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현재는 일부 흔적만이 남아 있다. 1995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정의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평지 석축 읍성.
발굴경위 및 결과
동벽의 적대(敵臺)는 본성을 만들 때 같이 쌓았고, 치성(雉城)은 북문의 동쪽과 서쪽 90m에 거리에 대칭이 되도록 배치했다. 해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기와 조각과 전돌, 그리고 조선 후기의 백자 접시, 종지, 흑유 접시가 출토되어 청도읍성의 주된 사용 시기를 보여준다.
건립경위
변천
임진왜란이 지난 후 나온 『여지도서(輿地圖書)』 와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청도읍성의 동문, 서문, 북문만 나와 있다. 그러나 1896년에 간행된 『청도군읍지』에는 군수 김도근이 새로 만든 남문인 진남루가 나온다. 남문은 1872년에 나온 「지방지도」에도 남아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
- 『경상도속찬지리지』
- 『경상도지리지』
- 『대동지지』
- 『세종실록지리지』
- 『신증동국여지승람』
- 『오산지』
- 『여지도서』
단행본
- 『청도읍성 보수(복원) 기본계획』(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5)
- 『청도읍성 정밀지표조사보고서』(청도군·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5)
- 『청도읍성 동·북문루 구역 외 유적』(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9)
- 『청도읍성 3차발굴조사보고서-성내지·북쪽치성·남문지·형옥지-』(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2)
- 『청도읍성 동쪽 성벽 유적』(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8)
- 『청도읍성 서쪽 성벽 치성 및 각루유적』(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8)
- 『청도읍성 동쪽 성벽 유적』 2(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9)
- 『청도읍성 남쪽 성벽 유적』(경북문화재단 문화재연구원, 2020)
논문
- 정의도, 「조선초기 읍성의 축조와 그 배경-경상도지리지 소재 읍성을 중심으로-」(『문물』 9, 한국문물연구원, 201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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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성을 쌓을 때,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을 쌓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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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짚으로 새끼 날을 만들어 네모지게 결어 만든 큰 깔개. 흔히 곡식을 널어 말리는 데 쓰나, 시골에서는 큰일이 있을 때 마당에 깔아 놓고 손님을 모시기도 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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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돌이나 벽돌을 쌓을 때에 그 틈서리에 시멘트나 모르타르를 채워 다지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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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성문 양옆에 외부로 돌출시켜 옹성과 성문을 적으로부터 지키는 네모꼴의 대(臺).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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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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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자의 하나. 주례(周禮)에 규정된 자로서, 한 자가 곱자의 여섯 치 육 푼, 즉 23.1cm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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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6
: 성벽 위의 모서리에 지은 누각.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것으로,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쓰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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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7
: 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하게 둘러쌓은 산성이라는 뜻으로, 방비나 단결 따위가 견고한 사물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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