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읍성

  • 예술·체육
  • 유적
  • 시도자연유산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평지 석축 읍성.
유적
  • 관련 국가조선
  • 관련 인물김은위, 유비, 김도근
  • 높이2.5m
  • 둘레1884m
  • 면적6,570㎡
  • 소재지경상북도 청도군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2년
  • 정의도 (한국성곽학회)
  • 최종수정 2024년 02월 21일
청도읍성 미디어 정보

청도읍성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청도읍성(淸道邑城)은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평지 석축 읍성이다. 임진왜란 직전에 만들어졌다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수리하면서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성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현재는 일부 흔적만이 남아 있다. 1995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정의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평지 석축 읍성.

발굴경위 및 결과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진 청도읍성(淸道邑城)은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성의 대부분이 훼손되었다. 현재 너비 5.0~5.4m, 잔존 1~3단, 높이 1.5~2.2m 정도의 성벽만이 남아 있다. 성의 4대문에 대한 조사 결과, 북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개거식(開渠式)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두 차례에 걸쳐 성문이 보수된 흔적과 옹성(甕城)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동문지, 서문지, 남문지는 개발로 인해 훼손되어 문이 있던 자리를 확인하지 못하였다. 동쪽과 북쪽의 본성은 내 · 외벽을 협축하고, 내부는 천석과 뒤채움 토로 채웠다. 외벽은 기초석 위에 기단석을 놓은 다음 들여쌓기를 하였고, 벽의 아랫부분은 흙과 찰흙같은 점질토로 보강하였다. 내벽은 내부를 채운 돌보다 조금 큰 천석을 이용해 안으로 기울어지게 쌓았는데 후대에 변형되고 훼손되어 정확한 축성 기법은 알 수 없다.

동벽의 적대(敵臺)는 본성을 만들 때 같이 쌓았고, 치성(雉城)은 북문의 동쪽과 서쪽 90m에 거리에 대칭이 되도록 배치했다. 해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기와 조각과 전돌, 그리고 조선 후기의 백자 접시, 종지, 흑유 접시가 출토되어 청도읍성의 주된 사용 시기를 보여준다.

건립경위

『경상도지리지』『세종실록』에서 '보이는 둘레 190보에 물이 없다'고 한 청도읍성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피하여 청도군성을 일시적으로 동쪽 7리쯤에 있었던 폐성(吠城)으로 이전하고 조선 개국 초기까지 읍성에 편입했던 결과로 보인다. 오늘날 복원된 청도읍성은 1589년(선조 22)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성일이 정세의 위급함을 조정에 알린 후 만들어졌다. 동래에서 한양까지의 직선로에 인접한 주군의 성지를 보수하고 없는 곳은 새로 축조하게 하여 만든 것이다. 당시 군수 김은위가 1590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2년 만에 공사를 끝냈다.

변천

처음 건설된 청도읍성은 그 둘레가 1,403척이었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1,570보로 확장되었다. 주척(周尺)으로 환산하면 1,884m가 되는데, 이는 지금의 둘레와 비슷하다. 청도읍성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성내의 건물들이 모두 소실되었고, 기유년(1549)에 군수 유비가 건립한 동문 무회루도 병화로 소실되었다.

임진왜란이 지난 후 나온 『여지도서(輿地圖書)』 와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청도읍성의 동문, 서문, 북문만 나와 있다. 그러나 1896년에 간행된 『청도군읍지』에는 군수 김도근이 새로 만든 남문인 진남루가 나온다. 남문은 1872년에 나온 「지방지도」에도 남아 있다.

의의 및 평가

청도읍성은 우리나라 읍성 가운데 드물게 '평지 읍성'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또한 각 문지에 옹성, 적대와 함께 각루(角樓)까지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 읍성은 전란 때 방비를 위한 이상적인 성체를 구현한 성곽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 원전

  • - 『고려사』

  • - 『경상도속찬지리지』

  • - 『경상도지리지』

  • - 『대동지지』

  • - 『세종실록지리지』

  • - 『신증동국여지승람』

  • - 『오산지』

  • - 『여지도서』

  • 단행본

  • - 『청도읍성 보수(복원) 기본계획』(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5)

  • - 『청도읍성 정밀지표조사보고서』(청도군·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5)

  • - 『청도읍성 동·북문루 구역 외 유적』(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9)

  • - 『청도읍성 3차발굴조사보고서-성내지·북쪽치성·남문지·형옥지-』(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2)

  • - 『청도읍성 동쪽 성벽 유적』(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8)

  • - 『청도읍성 서쪽 성벽 치성 및 각루유적』(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8)

  • - 『청도읍성 동쪽 성벽 유적』 2(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9)

  • - 『청도읍성 남쪽 성벽 유적』(경북문화재단 문화재연구원, 2020)

  • 논문

  • - 정의도, 「조선초기 읍성의 축조와 그 배경-경상도지리지 소재 읍성을 중심으로-」(『문물』 9, 한국문물연구원, 2019)

주석

  • 주10

    : 성을 쌓을 때,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을 쌓는 일. 우리말샘

  • 주11

    : 짚으로 새끼 날을 만들어 네모지게 결어 만든 큰 깔개. 흔히 곡식을 널어 말리는 데 쓰나, 시골에서는 큰일이 있을 때 마당에 깔아 놓고 손님을 모시기도 했다. 우리말샘

  • 주12

    : 돌이나 벽돌을 쌓을 때에 그 틈서리에 시멘트나 모르타르를 채워 다지는 일. 우리말샘

  • 주13

    : 성문 양옆에 외부로 돌출시켜 옹성과 성문을 적으로부터 지키는 네모꼴의 대(臺). 우리말샘

  • 주14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우리말샘

  • 주15

    : 자의 하나. 주례(周禮)에 규정된 자로서, 한 자가 곱자의 여섯 치 육 푼, 즉 23.1cm이다. 우리말샘

  • 주16

    : 성벽 위의 모서리에 지은 누각.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것으로,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쓰였다. 우리말샘

  • 주17

    : 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하게 둘러쌓은 산성이라는 뜻으로, 방비나 단결 따위가 견고한 사물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