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청도군읍지(淸道郡邑誌)』 2종을 소장하고 있다. 1899년(광무 3)에 보고한 읍지는 내부(內部)의 읍지수상령(邑誌修上令)에 따라 편찬한 것이다. 1책 7장의 필사본으로, 표제는 ‘경상북도청도군읍지(慶尙北道眞寶郡邑誌)’이고, 권수제는 ‘청도군읍지’이다. 경상북도 관찰부에 보고한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의 『청도군읍지』도 형태나 내용이 같다.
수록 항목은 지도, 강역, 관아, 객사, 근안고설(謹按古說),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산천,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성지(城池), 임수(林藪), 창고(倉庫), 군기(軍器), 관애(關阨), 진보(鎭堡), 산성, 봉수(烽燧), 학교, 단묘(壇廟), 불우(佛宇), 공해(公廨), 교량(橋梁),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과거(科擧), 인물, 도로 순으로 구성하였다. 이전에 보고한 읍지에 비하여 환적과 제영, 비판, 책판 등 많은 항목과 내용을 생략하였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832년]와 『영남읍지(嶺南邑誌)』[1871년], 국립고궁박물관의 『읍지(邑誌)』[1878년] 수록본은 수록 항목과 내용이 풍부하다. 성균관대학교 존경각의 『청도군읍지』도 같은 형태이며, 환적은 1864년(고종 1)에 부임한 김석근(金奭根)까지 기록하였다. 책판 항목 뒤에 영헌공사적(英憲公事蹟) 등 다수의 기문을 수록하였으며, 93장에 이르는 ‘읍사례(邑事例)’를 합철(合綴)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보고한 『영남읍지』에 실린 읍지는 사례(事例)를 합철하였으며, 관기(官基)와 강계(疆界), 경내승지(境內勝地), 사묘(祠廟), 총묘(塚墓) 등 다른 읍지에서 볼 수 없는 항목명을 제시하였다. 환적은 생략하였다.
한편, 또 하나의 『청도군읍지』는 『대구진관청도군[읍지]』을 1910년대 전반에 베낀 것이다. 1786년에 보고한 읍지를 정서한 것으로,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이마니시문고[今西文庫]의 『함양지(咸陽誌)』에 합철되어 있다. 이 읍지는 1832년 이래의 읍지와 달리,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개설한 35개 항목을 나열하면서, 청도군에 해당하지 않는 항목 아래에는 ‘무(無)’라고 표시하였다. 누정을 누정제영으로 변경하고, 마지막에는 책판과 읍재(邑宰)를 추가하였다. 읍재는 1781년(정조 5)에 부임한 이의기(李宜耆)까지이다. 규장각의 후사본(後寫本)은 이의기 아래 이석(李䄷)을 기재하였는데, 필사자가 임의로 추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