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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탕고(內帑庫)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재물을 보관하던 창고이다. 왕실 사유재산을 관리하던 내수사의 창고이다. 17세기부터 각종 궁방(宮房)이 창설되면서 내탕을 관리하는 기구가 다양해졌다. 내수사와 궁방은 토지와 노비의 신공을 주요 재원으로 하여 운영되었다.
내탕고 (內帑庫)
내탕고(內帑庫)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재물을 보관하던 창고이다. 왕실 사유재산을 관리하던 내수사의 창고이다. 17세기부터 각종 궁방(宮房)이 창설되면서 내탕을 관리하는 기구가 다양해졌다. 내수사와 궁방은 토지와 노비의 신공을 주요 재원으로 하여 운영되었다.
농장은 권세가들이 사사로이 차지하고 있던 대규모의 농업용 토지이다. 전장(田莊), 전장(田庄), 전원, 농장이라고 한다. 무신정권의 출현과 몽골의 침입 등으로 사회가 혼란해지고 전시과 체제가 붕괴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농장은 불법적인 탈점(奪占)을 전제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국가 재정을 파괴하고 민생에 해독을 끼쳤다. 그러나 농장에 수용된 몰락 농민이 농장주와 지대를 주고받는 생산관계를 형성하면서 경제적 차원의 합법적 경영으로 변화되었다. 이후 농장의 경영으로 대표되는 지주적 토지지배가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농장 (農莊)
농장은 권세가들이 사사로이 차지하고 있던 대규모의 농업용 토지이다. 전장(田莊), 전장(田庄), 전원, 농장이라고 한다. 무신정권의 출현과 몽골의 침입 등으로 사회가 혼란해지고 전시과 체제가 붕괴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농장은 불법적인 탈점(奪占)을 전제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국가 재정을 파괴하고 민생에 해독을 끼쳤다. 그러나 농장에 수용된 몰락 농민이 농장주와 지대를 주고받는 생산관계를 형성하면서 경제적 차원의 합법적 경영으로 변화되었다. 이후 농장의 경영으로 대표되는 지주적 토지지배가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보(寶)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특수 명목의 기금을 형성하여 여기에서 나오는 이자로 사업을 펼쳐나가던 재단이다. 특히 사원에서 전곡(錢穀)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삼보(三寶)를 받드는 여러 불사(佛事)에 지출하는 기금이었다. 보는 삼국시대부터 보이며, 조선 중기에 사라지는데, 고려 때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보를 운영하는 중심층은 불교계였지만 국가나 세속인도 보 형식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이자를 취득한 뒤 특정 용도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보 (寶)
보(寶)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특수 명목의 기금을 형성하여 여기에서 나오는 이자로 사업을 펼쳐나가던 재단이다. 특히 사원에서 전곡(錢穀)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삼보(三寶)를 받드는 여러 불사(佛事)에 지출하는 기금이었다. 보는 삼국시대부터 보이며, 조선 중기에 사라지는데, 고려 때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보를 운영하는 중심층은 불교계였지만 국가나 세속인도 보 형식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이자를 취득한 뒤 특정 용도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부곡은 고려 및 조선 초기에 있었던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방 행정 단위이다. 읍사(邑司)와 장리(長吏)가 있었으나 일반 군현(郡縣)과 구분되어 운영되었다. 주민의 신분에 대해서는 양인설(良人說)과 천인설(賤人說)이 있으며, 고려후기부터 폐지되거나 군현으로 승격하면서 점차 소멸하였다. 한편 정치적 징계의 의미로 군현을 일시적으로 부곡으로 강등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부곡 (部曲)
부곡은 고려 및 조선 초기에 있었던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방 행정 단위이다. 읍사(邑司)와 장리(長吏)가 있었으나 일반 군현(郡縣)과 구분되어 운영되었다. 주민의 신분에 대해서는 양인설(良人說)과 천인설(賤人說)이 있으며, 고려후기부터 폐지되거나 군현으로 승격하면서 점차 소멸하였다. 한편 정치적 징계의 의미로 군현을 일시적으로 부곡으로 강등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고려시대의 향직(鄕職).
중윤 (中尹)
고려시대의 향직(鄕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