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장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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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산은 해방 이후 3, 4, 5, 6, 7, 8, 9대 국회의원과 신민당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5년 충남 금산 출생으로 1926년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독서회사건으로 투옥되었다. 광복 여러 청년 조직을 결성해 청년운동을 하던 중 정계에 투신하였다. 1954년 이래 3~9대 연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야당 중진 의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970년 신민당 총재를 역임했다. 1974년 유신헌법개헌투쟁을 선언하고 나섰으나 결장암으로 죽었다. 유진산은 권모술수에 능한 합리주의자로, 민주정치의 기본을 대화와 타협에 두었던 정치인이었다.
유진산 (柳珍山)
유진산은 해방 이후 3, 4, 5, 6, 7, 8, 9대 국회의원과 신민당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5년 충남 금산 출생으로 1926년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독서회사건으로 투옥되었다. 광복 여러 청년 조직을 결성해 청년운동을 하던 중 정계에 투신하였다. 1954년 이래 3~9대 연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야당 중진 의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970년 신민당 총재를 역임했다. 1974년 유신헌법개헌투쟁을 선언하고 나섰으나 결장암으로 죽었다. 유진산은 권모술수에 능한 합리주의자로, 민주정치의 기본을 대화와 타협에 두었던 정치인이었다.
장직상은 일제강점기 경일은행, 동아인촌주식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이며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3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경상북도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아들이다. 하양군수, 선산군수 등을 지내다가 1916년에 기업인이 되어 경일은행 등을 설립했다.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로 활동하였는데 다섯 차례 연임되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이 관리하는 남선전기회사의 사장, 대한생명보험회사 취체역 회장 등을 맡았다. 1949년 반민특위에 자수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으며 1959년에 사망했다.
장직상 (張稷相)
장직상은 일제강점기 경일은행, 동아인촌주식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이며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3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경상북도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아들이다. 하양군수, 선산군수 등을 지내다가 1916년에 기업인이 되어 경일은행 등을 설립했다.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로 활동하였는데 다섯 차례 연임되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이 관리하는 남선전기회사의 사장, 대한생명보험회사 취체역 회장 등을 맡았다. 1949년 반민특위에 자수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으며 1959년에 사망했다.
함석태는 일제강점기 한성치과의사회 회장, 서울 삼각정 총대 등을 역임한 수장가이다. 1889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났다. 일본 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14년 조선총독부 치과의사면허 제1호로 등록되었다. 1914년 서울 삼각정에 한성치과의원을 개업하였고 1925년에는 한성치과의사회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고미술품을 많이 수장하였는데 특히 도자기 소품을 많이 모았다. 당시 대표적인 화상(畫商) 오봉빈이 그를 ‘소물진품대왕’이라 부를 정도였다. 1944년 일본의 소개령(疏開令)으로 고미술품을 가지고 고향 연변으로 피신하였는데 이후의 소식은 알 수 없다.
함석태 (咸錫泰)
함석태는 일제강점기 한성치과의사회 회장, 서울 삼각정 총대 등을 역임한 수장가이다. 1889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났다. 일본 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14년 조선총독부 치과의사면허 제1호로 등록되었다. 1914년 서울 삼각정에 한성치과의원을 개업하였고 1925년에는 한성치과의사회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고미술품을 많이 수장하였는데 특히 도자기 소품을 많이 모았다. 당시 대표적인 화상(畫商) 오봉빈이 그를 ‘소물진품대왕’이라 부를 정도였다. 1944년 일본의 소개령(疏開令)으로 고미술품을 가지고 고향 연변으로 피신하였는데 이후의 소식은 알 수 없다.
반독재민주수호연맹은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반공투쟁위원회의 장택상과 일부 비보수계 군소정당 대표자들이 모여 결성한 조직이다. 장택상과 박기출을 정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으나 경찰의 후보 등록 방해로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반독재민주수호연맹 (反獨裁民主守護聯盟)
반독재민주수호연맹은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반공투쟁위원회의 장택상과 일부 비보수계 군소정당 대표자들이 모여 결성한 조직이다. 장택상과 박기출을 정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으나 경찰의 후보 등록 방해로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