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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본 제법집요경 권6(再雕本 諸法集要經 卷六)은 13세기 초에 새긴 재조본 고려대장경에 포함된 『제법집요경』 권6의 인본이다. 이 불경은 고려 고종 때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자 1236년(고려 고종 23)부터 1251년(고려 고종 38)까지 16년간에 걸쳐 다시 조성한 재조본 고려대장경 인본(印本)의 하나이다. ‘팔만대장경‘으로 일컫는 재조본 고려대장경은 경판이 현전하기 때문에 초조본 고려대장경 인본에 비해 관심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재조본 고려대장경의 고려시대 인본은 국내에 매우 드물게 전한다. 절첩본으로 장책되어 있다.
재조본 제법집요경 권6 (再雕本 諸法集要經 卷六)
재조본 제법집요경 권6(再雕本 諸法集要經 卷六)은 13세기 초에 새긴 재조본 고려대장경에 포함된 『제법집요경』 권6의 인본이다. 이 불경은 고려 고종 때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자 1236년(고려 고종 23)부터 1251년(고려 고종 38)까지 16년간에 걸쳐 다시 조성한 재조본 고려대장경 인본(印本)의 하나이다. ‘팔만대장경‘으로 일컫는 재조본 고려대장경은 경판이 현전하기 때문에 초조본 고려대장경 인본에 비해 관심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재조본 고려대장경의 고려시대 인본은 국내에 매우 드물게 전한다. 절첩본으로 장책되어 있다.
재조본 『사분율』 권47~50은 조선 전기,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설명한 『사분율』의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을 인출한 불교의 율전이다. 『사분율』은 법장부에 전승된 율장이며 불타야사가 역출한 60권이다. 『사분율』은 크게 출가승의 행위에 관한 조문, 교단의 의식작법 및 승단의 생활에 관한 규정으로 크게 나뉜다. 이 가운데 권47~50은 멸쟁건도, 비구니건도, 법건도, 방사건도를 내용으로 한다.
재조본 사분율 권47~50 (再雕本 四分律 卷四十七~五十)
재조본 『사분율』 권47~50은 조선 전기,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설명한 『사분율』의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을 인출한 불교의 율전이다. 『사분율』은 법장부에 전승된 율장이며 불타야사가 역출한 60권이다. 『사분율』은 크게 출가승의 행위에 관한 조문, 교단의 의식작법 및 승단의 생활에 관한 규정으로 크게 나뉜다. 이 가운데 권47~50은 멸쟁건도, 비구니건도, 법건도, 방사건도를 내용으로 한다.
『한글대장경』은 고려시대 대장도감에서 집대성한 재조본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삼아 동국대학교의 동국역경원이 1964년부터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해 2000년에 총 318책으로 간행한 우리말 대장경이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에서 『고려대장경』의 원문과 번역문을 통합한 통합대장경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글대장경 (한글大藏經)
『한글대장경』은 고려시대 대장도감에서 집대성한 재조본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삼아 동국대학교의 동국역경원이 1964년부터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해 2000년에 총 318책으로 간행한 우리말 대장경이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에서 『고려대장경』의 원문과 번역문을 통합한 통합대장경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21(大方廣佛華嚴經 晋本 卷二十一)은 조선 전기, 재조본(再雕本) 고려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21의 인본(印本)이다. 이 불경은 고려 고종 때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소실되자, 1236년(고려 고종 23)부터 1251년(고려 고종 38)까지 16년간에 걸쳐 다시 조성한 재조본 고려대장경[해인사 대장경(海印寺 大藏經)] 인본의 하나이다. 고려시대 또는 조선 전기의 대장경 인본은 국내에 매우 드물게 전한다. 권자본(卷子本)으로 장책된 이 책은 조선 전기의 인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21 (大方廣佛華嚴經 晋本 卷二十一)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21(大方廣佛華嚴經 晋本 卷二十一)은 조선 전기, 재조본(再雕本) 고려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21의 인본(印本)이다. 이 불경은 고려 고종 때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소실되자, 1236년(고려 고종 23)부터 1251년(고려 고종 38)까지 16년간에 걸쳐 다시 조성한 재조본 고려대장경[해인사 대장경(海印寺 大藏經)] 인본의 하나이다. 고려시대 또는 조선 전기의 대장경 인본은 국내에 매우 드물게 전한다. 권자본(卷子本)으로 장책된 이 책은 조선 전기의 인본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