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제례아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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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식의 초헌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작헌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성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이후 세종대에 「성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과 고선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과 ‘고선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작헌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성안지곡 (成安之曲)
「성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식의 초헌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작헌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성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이후 세종대에 「성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과 고선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과 ‘고선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작헌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숙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원구와 선농 제례의 철변두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대려궁과 태주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곡 이름이 「숙안지악」으로 바뀌었고, 선농과 우사의 제례의 전폐 절차에 태주궁으로 연주되었다. 세종대에 그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악조도 남려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이 「숙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조선 전기에는 선잠의 전폐악으로도 쓰였으나, 현재 세 제례가 폐절됨에 따라 이 악곡도 연주되지 않고 있다.
숙안지곡 (肅安之曲)
「숙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원구와 선농 제례의 철변두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대려궁과 태주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곡 이름이 「숙안지악」으로 바뀌었고, 선농과 우사의 제례의 전폐 절차에 태주궁으로 연주되었다. 세종대에 그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악조도 남려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이 「숙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조선 전기에는 선잠의 전폐악으로도 쓰였으나, 현재 세 제례가 폐절됨에 따라 이 악곡도 연주되지 않고 있다.
「풍안지곡」은 고려시대 이후 현재까지 전하는 제례아악 중의 하나이다. 음식을 올리는 절차를 위한 곡이다. 고려시대에는 친제와 유사 섭사의 진찬 절차에서 모두 「풍안지곡」이 연주되었으나 조선시대 이후 현재까지 진찬례는 친제에서만 주악을 갖춰 헌가에서 연주하고, 무무가 수반되었다. 4언 1구, 8구 1장에 1자1음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려시대 「풍안지곡」의 선율과 악장은 알 수 없고 조선조의 『세종실록』 「악보」 소재 임우 『대성악보』에서 고선궁의 선율과 악장을 확인할 수 있으나, 현행 문묘제례악 악보의 「풍안지곡」과는 다르다.
풍안지곡 (豊安之曲)
「풍안지곡」은 고려시대 이후 현재까지 전하는 제례아악 중의 하나이다. 음식을 올리는 절차를 위한 곡이다. 고려시대에는 친제와 유사 섭사의 진찬 절차에서 모두 「풍안지곡」이 연주되었으나 조선시대 이후 현재까지 진찬례는 친제에서만 주악을 갖춰 헌가에서 연주하고, 무무가 수반되었다. 4언 1구, 8구 1장에 1자1음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려시대 「풍안지곡」의 선율과 악장은 알 수 없고 조선조의 『세종실록』 「악보」 소재 임우 『대성악보』에서 고선궁의 선율과 악장을 확인할 수 있으나, 현행 문묘제례악 악보의 「풍안지곡」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