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원구와 선농 제례의 철변두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대려궁과 태주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곡 이름이 「숙안지악」으로 바뀌었고, 선농과 우사의 제례의 전폐 절차에 태주궁으로 연주되었다. 세종대에 그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악조도 남려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이 「숙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조선 전기에는 선잠의 전폐악으로도 쓰였으나, 현재 세 제례가 폐절됨에 따라 이 악곡도 연주되지 않고 있다.
「숙안지곡(肅安之曲)」은 고려시대에 주1와 주2 제례의 주3 절차에서 등가(登歌)가 각각 ‘대려궁(大呂宮)’과 ‘태주궁(太蔟宮)’으로 연주하던 아악곡이다. 「숙안」이란 곡 이름은 송 인종 경우(景祐) 연간[1034~1037]에 처음 사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맹춘(孟春)[음력 1월]에 지내는 감생제(感生帝)의 제사에서 작헌악(酌獻樂)으로 쓰였다.
이후 휘종 대관 연간[1107~1110]부터 「숙안」이 ‘사호천상제의(祀昊天上帝儀)[유사행사(有司行事)]’, ‘종사상제의(宗祀上帝儀)[유사행사]’, ‘기곡사상제의(祈糓祀上帝儀)[유사행사]’, ‘우사상제의(雩祀上帝儀)[유사행사]’, ‘사감생제의(祀感生帝儀[유사행사]’, ‘사제내의(祀帝鼐儀)’ 등 여러 제례의 철변두악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선농 제례에는 「숙안」이 연주되지 않았다.
송대에는 아악곡의 이름에 ‘안(安)’자를 돌림으로 사용하였고, 그 이름 뒤에 ‘~지악(之樂)’을 붙였다. 고려시대의 「숙안지곡」은 송대의 ‘안’자 돌림을 사용했지만, 곡 이름 뒤에 ‘~지곡(之曲)’을 붙임으로써 송대의 「숙안지악(肅安之樂)」과 다르다. 곡 이름 뒤에 ‘~지곡’을 붙인 시기는 원대로서 근 100년의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원대의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에는 송대의 방식을 따라 곡 이름을 「숙안지악」이라 칭하였다. 태종대에 선농의 철변두악이 「옹안지악(雍安之樂)」으로 바뀌었고, 「숙안지악」은 선농과 우사의(雩祀儀)의 전폐 절차에서 「열문지무」와 함께 등가가 태주궁으로 연주하였다. 이후 세종대에 신제아악(新製雅樂)이 마련된 뒤로 고려 전래의 기존 아악이 자연 폐기됨에 따라 「숙안지악」 역시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南呂宮)으로 바뀌었다.
세종대 144곡에 달하던 신제제사아악은 이후 성종대의 문헌에서 15곡으로 축소되어 나타나는데, 그 중 ‘남려궁’이 「숙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의하면, 「숙안지악」은 선농, 주4 외에 선잠의 전폐악으로도 쓰였으나, 현재 세 제례가 행해지지 않으므로 이 악곡도 연주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