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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은 일제강점기 매일신보사 사장, 조선신문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07년 황해도 관찰도 순검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 경찰서의 순사와 경부로 근무했다. 1920년 평안북도 경찰부 고등경찰과장에 임명되면서 만주에서 활약하던 독립단 간부와 독립군 등을 체포하였다. 이후 전라남도 내무부 산업과장, 함경북도 내무부 내무부장, 충청남도지사에 임명되었다. 1941년 매일신보사 사장에 취임했으며 각종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1949년 반민특위 특별검찰부에 의해 기소되었으나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한국전쟁 중에 자택에서 납북되었다.
이성근 (李聖根)
이성근은 일제강점기 매일신보사 사장, 조선신문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07년 황해도 관찰도 순검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 경찰서의 순사와 경부로 근무했다. 1920년 평안북도 경찰부 고등경찰과장에 임명되면서 만주에서 활약하던 독립단 간부와 독립군 등을 체포하였다. 이후 전라남도 내무부 산업과장, 함경북도 내무부 내무부장, 충청남도지사에 임명되었다. 1941년 매일신보사 사장에 취임했으며 각종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1949년 반민특위 특별검찰부에 의해 기소되었으나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한국전쟁 중에 자택에서 납북되었다.
장직상은 일제강점기 경일은행, 동아인촌주식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이며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3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경상북도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아들이다. 하양군수, 선산군수 등을 지내다가 1916년에 기업인이 되어 경일은행 등을 설립했다.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로 활동하였는데 다섯 차례 연임되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이 관리하는 남선전기회사의 사장, 대한생명보험회사 취체역 회장 등을 맡았다. 1949년 반민특위에 자수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으며 1959년에 사망했다.
장직상 (張稷相)
장직상은 일제강점기 경일은행, 동아인촌주식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이며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3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경상북도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아들이다. 하양군수, 선산군수 등을 지내다가 1916년에 기업인이 되어 경일은행 등을 설립했다.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로 활동하였는데 다섯 차례 연임되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이 관리하는 남선전기회사의 사장, 대한생명보험회사 취체역 회장 등을 맡았다. 1949년 반민특위에 자수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으며 1959년에 사망했다.
최두선은 해방 이후 민주국민당 부위원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언론인, 교육자이다. 1894년 서울 출생으로 육당 최남선의 동생이다. 1917년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 졸업 후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이 되었고, 조선어연구회에서 활동하였다. 1922년 독일 유학 후 귀국해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으로 복임했다. 1947년 동아일보사 사장, 1953년 민주국민당 부위원장, 1963년 제3공화국 초대 내각의 총리로 활동했다. 1963년 고려대학교와 1968년 와세다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2년 국민훈장무궁화장을 수여 받았다.
최두선 (崔斗善)
최두선은 해방 이후 민주국민당 부위원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언론인, 교육자이다. 1894년 서울 출생으로 육당 최남선의 동생이다. 1917년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 졸업 후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이 되었고, 조선어연구회에서 활동하였다. 1922년 독일 유학 후 귀국해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으로 복임했다. 1947년 동아일보사 사장, 1953년 민주국민당 부위원장, 1963년 제3공화국 초대 내각의 총리로 활동했다. 1963년 고려대학교와 1968년 와세다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2년 국민훈장무궁화장을 수여 받았다.
해방 이후 상공부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여성지도자.
임영신 (任永信)
해방 이후 상공부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여성지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