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은 1988년 2월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제37차 총회에서 통일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의견을 우리 민족과 온 세계에 발표한 선언이다. 1981년 제4차 한독교회협의회에서 분단된 국가의 통일이 곧 교회의 과제임이 언급되었다. 1982년 한독교회협의회의 권고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통일문제연구원을 조직하였다. 이후 선언의 초안 작성, 수정안 작성, 공청회 등을 거쳐 1988년에 선언이 채택되었다. 선언의 주 내용은 통일 운동을 ‘민중 주체, 평화의 통일’로 규정하고, 인도주의에 입각해 평화 교류를 한다는 것이다.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하 선언)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문제를 고민해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가맹 교단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통일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고백적인 내용을 담아 우리 민족과 온 세계에 발표한 선언이다.
남북의 그리스도인들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제37차 총회 개최 이전부터 함께 모여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고 몇 번에 걸쳐 성명서를 발표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선언」을 발표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81년 6월 8일부터 10일까지 서울의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진행된 제4차 한독교회협의회의 개최였다.
이 모임은 “분단국에서 그리스도 고백-죄책 고백과 새로운 책임”이란 제목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공동결의문을 통해 분단된 국가의 통일이 곧 교회의 과제임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통일문제를 의논하고 촉진하는 위원회나 연구소를 설치할 것을 권장하며, 독립교회가 재독 한인들의 평화통일에 관한 논의를 지원하도록 요청하였다.
한독교회협의회의 권고에 따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82년 2월 2일 산하에 통일문제연구원 운영위원회를 특별위원회로 설치하기로 하고,동년 9월 16일 운영위원회를 조직하였다. 하지만 정부의 반대로 운영위원회는 조직 후 4년 동안 통일을 위한 협의회로 모일 수 없었으며, 별다른 진척도 없었다.
이후 1985년 3월 27∼28일 온양에서 열린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제34차 총회에서 「한국교회 평화통일선언」이 채택되어 발표되었다. 이 선언의 주요 내용은 통일운동을 ‘민중 주체, 평화의 통일’로 규정했고, 인도주의에 입각한 평화 교류를 주장하였다. 또한 통일의 목표가 민주화와 정의사회의 실현에 있으며, 분단 고착화를 정당화 내지는 묵인했던 교회의 죄책을 하나님과 민족 앞에 고백한다는 것이었다.
1985년 5월 24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주최한 제1차 NCC 통일문제협의회가 “정의 평화 교회”라는 주제로 개최되면서, 여기서부터 「선언」의 작성이 본격화되었다. 1986년에 이어 1987년 9월에 「선언」의 초안이 제출되었고, 1988년 1월 21∼23일에 제5차 통일문제협의회가 개최되었다. 그 사이에 수정안도 세 차례 제출되었고, 공개적인 토의 과정과 협의 도출 과정을 거쳐 1988년 2월 29일 제37차 총회에 선언문이 상정되면서 참석 회원의 만장일치로 「선언」이 채택되었다.
연인원 350명이 넘는 회원 교단 지도자들이 모여 다섯 차례의 협의 과정에서 논의된 「선언」은 모든 과정을 공개, 본 협의회 비가맹 교단과도 협의를 시도, 여당과 야당 전문 인사들의 의견은 물론 사회과학자, 성서학자들의 자문도 구했다.
「선언」은 신앙고백에 이어 총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정리되었는데, ⑴ 정의와 평화를 위한 교회의 선교적 전통, ⑵ 민족 분단의 현실, ⑶ 분단과 증오에 대한 죄책 고백, ⑷ 민족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기본 원칙, ⑸ 남북한 정부에 대한 한국교회의 건의, ⑹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 등이다.
「선언」의 요지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 부분은 신앙고백과 이 선언의 신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였다. 즉 한국기독교가 민족 분단이라는 엄청난 죄악을 두고 누구도 떠맡지 않으려 한 죄책을 먼저 겸허하게 고백하였다. 이 죄책 고백은 「선언」이 다른 통일선언과 구별되는 기독교적인 신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부분이었다.
둘째 부분은 통일의 원칙을 제시하고 그 원칙을 실행하기 위한 실천사항들을 다섯 가지로 남북 정부에 건의하였다. 통일의 원칙은 7·4남북공동성명에서 제시한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수용하고, 그 위에 ‘인도주의적 원칙’과 ‘민족 구성원 전체의 민주적 참여의 원칙’을 강조하였다. 그에 대한 실천사항은 다음과 같다.
① 분단으로 인한 상처의 치유를 위한 이산가족의 동거의 자유와 일정 기간 방문의 자유 및 연좌제의 폐기, ② 분단 극복을 위한 국민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증진시키기 위하여 남북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정보의 공개와 언론 · 통일연구의 자유, 양측의 체제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유 및 세계 인권선언 등의 준수, ③ 사상 · 이념 · 제도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을 위하여 민족 동질성 회복을 전제로 한 상호 비방과 배타주의의 극복, 교류 · 방문 · 통신의 개방과 언어 · 전통 · 경제의 교류, ④ 남북한 긴장 완화와 평화증진을 위한 평화 협정과 불가침조약의 체결, 주한 미군의 궁극적인 철수와 군축 및 비핵화, ⑤ 민족 자주성의 실현을 위한 외세의 간섭 배제와 외교 관계의 재정비다.
셋째 부분은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95년을 ‘평화와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하며, ② 한국교회는 ‘희년을 향한 대행진’ 속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교회 갱신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며, ③ 평화와 통일의 희년을 선포하기 위하여 한국교회는 평화와 화해의 결단을 하는 신앙공동체로서 평화 교육과 통일 교육을 폭넓게 시행해 나갈 것이며, ④ 한국교회는 평화와 통일을 선포하는 희년 축제와 예전(禮典)을 통하여 신앙을 새롭게 하고 참다운 화해와 일치를 실천해 나가며, ⑤ 한국교회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연대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간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선언」은 남북한 당국 간에 협의된 통일 원칙인 7·4남북공동성명의 3대 원칙에 ‘인도주의’와 ‘통일 논의에의 국민 참여’라는 두 원칙을 추가해서 한국교회의 남북통일 5원칙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한 평화 구조 강화를 위해 불가침 선언, 평화협정, 군축 문제, 핵과 외국 군대 철수 문제 등에 대한 독자적인 입장 천명을 통해 1995년을 ‘평화 통일 희년’으로 선포하는 내용을 포함하였다.
제4차 한독교회협의회의 조언으로 통일문제연구원을 개설하기로 협의한 지 7년 만에 발표된 이 「선언」은 군사정권의 탄압 속에서 나온 것으로 이것이 발표되자 통일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오던 한국기독교계에 비판과 지지의 큰 반향이 일어났다.
「선언」은 그동안 한국기독교인들의 잠자던 통일의식을 일깨우게 된 전환점이 되었으며 “분단 반세기 동안에 남한 사회에서 민간 부분에 의해 제출된 최초의 본격적인 통일선언으로 획기적인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민족 통일문제를 향한 한국교회의 예언자적이며 객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한 기독교 통일운동과 한국의 통일운동 뿐만 아니라 세계교회 운동사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는데, 먼저 「선언」은 그동안 진행해오던 남한 기독교계의 통일 논의를 처음으로 종합 정리하였으며, 내부에서의 통일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선언」이 발표된 그해 7월 노태우 대통령의 7·7특별선언 발표를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1991년 12월 13일 남북 사이에 채택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그 해 12월 31일의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이 「선언」의 내용을 거의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분단 현실을 고착화시킨 이념과 체제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지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안이 미흡했다는 지적과 함께 우리가 이루려는 통일 조국이 어떠한 모습인가에 대한 전망을 분명하게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비판적 시각도 제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