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아펜젤러 목사가 시작한 인천 내리교회에는 1892년 존스(G. H. Jones, 조원시) 목사가 후임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직후부터 존스 목사는 강화 지역 선교를 시작하고자 하였으나, 강화 지역민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내리교회 안에서는 전도의 한 방편으로 상조계를 조직하였는데, 외국 선교사들이 뒤를 봐준다는 소문을 들은 상인들이 몰려들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계원 중 한 사람이 곗돈을 횡령하고 도망치는 사건이 일어나 계원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교회의 평판이 나빠졌다. 그러나 당시 50여 명의 계원 가운데 두 사람이 교회를 떠나지 않았는데, 그 중 한 명이 강화 서사면(지금의 양사면) 시루미[甑山] 출신 이승환이었다.
1893년 존스 목사는 인천에 있던 전도인 이명숙을 시루미 마을로 보냈고, 이승환의 집에서 교인 4∼5명이 모여 예배를 시작하였다. 한편 서민층이었던 이승환과는 달리 양반 출신이 김상임의 입교는 강화지역 복음 전파에 큰 계기를 마련하였다. 기독교를 믿게 된 김상임은 가신(家神)과 사당을 불사르고 자기 집 앞마당에 열두 칸짜리 예배당을 지어 시루미 이승환의 집에 모였던 교인들을 옮겨오게 했다. 이로써 김상임이 살던 다리목[橋項] 양반들과 이승환이 살던 시루미 서민들 50여 명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어 교산교회가 시작되었다. 교회 이름은 교항(橋項)과 증산(甑山)을 합친 것이다. 1893년 말 존스와 스크랜턴 선교사가 교산교회에서 유숙하기도 했고, 내리교회 전도부인 백헬렌도 6차례에 걸쳐 10주간을 머물면서 강화 전도에 힘썼다.
1930년 ‘기독교 대한 감리회 강화구역 교산교회’로 개칭하였지만, 1930년대 이후 교회가 소강 상태였다. 1950년 ‘중부연회 강화지방 양사구역 교산교회’로 개편되었고, 1961년 새로운 예배당이 건축되었다. 1977년 30평의 성전을 증축했고, 1979년에 목사관을 신축하였다. 1981년 구역회의 결의로 교산교회 명칭을 ‘양사중앙교회’로 변경했고, 1982년에는 ‘새마을유아원’을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994년 구역회에서 교회명칭을 ‘강화 교산교회’로 다시 변경하였으며, 그해 창립 100주년 기념 예배를 드리고 『사진으로 보는 강화교산교회100년사』를 발간하고, 김상임 전도사 공덕비를 제막하였다. 2003년에는 110주년 존스기념예배당을 봉헌하였고, 2009년에는 ‘강화복음전래기념비’를 제막하였다. 2013년에는 창립 120주년 기념 ‘강화초대기독교선교역사관’을 봉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