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교회 ()

개신교
단체
강원도 홍천군 서면 한서로677에 위치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이칭
이칭
모곡교회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강원도 홍천군 서면 한서로677에 위치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연원 및 변천

한서교회는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한 한서 남궁억이 세운 감리교회로 원래의 이름은 지명을 딴 모곡교회이다. 1915년 남감리회 본처 선교사로 임명받은 남궁억은 1918년 강원도 홍천군 모곡(보리울)로 낙향하여 그 다음해 예배당과 학교 부지 5,200평을 매입하고, 10칸 기와예배당을 신축하였다. 이것이 모곡교회의 시작이다.

이와 함께 남궁억은 모곡서당을 설립하였고, 1922년에는 사립 모곡학교를 개교하여 근대교육에도 앞장섰다. 1925년 모곡학교는 6년제 사립 모곡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으며, 무궁화 묘포를 경영하여 무궁화 보급에 앞장섰다. 특히 남궁억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등 100여 곡의 애국가요를 직접 지어 보급하였으며, 『동사략』, 『 조선니약이』 전5권 등을 저술하여 비밀리에 보급하면서 학생들에게 한국 역사를 알렸다.

1933년 11월 독립운동 비밀결사대인 ‘십자가당 사건’으로 남궁억이 구속되면서 사립 모곡학교는 폐교되었고, 모곡교회도 명맥이 끊어졌다.

현황

현재 옛 모곡교회와 모곡학교 터에는 한서남궁억기념관(2004년 6월 개관)과 옛 예배당이 복원되어 있고, 그 옆에 한서기념교회와 무궁화 동산이 조성되어 있다. 기념관에는 무궁화 십자가당 사건 취조 장면 재현, 보리울 모곡학교 모형, 남궁억의 붓글씨와 저서, 『독립신문』 영인본, 『황성신문』 영인본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무궁화 자수 지도와 그가 작사한 노래 중 10여 곡을 청취할 수 있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기념관 옆에는 말끔히 복원된 한서교회의 옛 교회 모곡교회 건물에는 남궁억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운데 흰 천을 중심으로 남녀가 따로 앉아 예배를 드리던 당시 모습이 인형으로 재현되어 있고, 풍금 및 남궁억의 친필 사본 족자가 전시되어 있다. 이 교회는 십자가당 사건으로 남궁억 선생이 구속되자 일제에 의해 강제로 뜯겨 폐쇄된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다.

참고문헌

『무궁화 사랑으로 삼천리를 수놓은 남궁억』(이순자, 역사공간, 2012)
『믿음의 흔적을 찾아: 한국의 기독교 유적』(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1)
『보리울』1·2(윤형섭, 도서출판 향지, 2010)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현재호, 홍천군, 1999)
집필자
이순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