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교회는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한 한서 남궁억이 세운 감리교회로 원래의 이름은 지명을 딴 모곡교회이다. 1915년 남감리회 본처 선교사로 임명받은 남궁억은 1918년 강원도 홍천군 모곡(보리울)로 낙향하여 그 다음해 예배당과 학교 부지 5,200평을 매입하고, 10칸 기와예배당을 신축하였다. 이것이 모곡교회의 시작이다.
이와 함께 남궁억은 모곡서당을 설립하였고, 1922년에는 사립 모곡학교를 개교하여 근대교육에도 앞장섰다. 1925년 모곡학교는 6년제 사립 모곡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으며, 무궁화 묘포를 경영하여 무궁화 보급에 앞장섰다. 특히 남궁억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등 100여 곡의 애국가요를 직접 지어 보급하였으며, 『동사략』, 『 조선니약이』 전5권 등을 저술하여 비밀리에 보급하면서 학생들에게 한국 역사를 알렸다.
1933년 11월 독립운동 비밀결사대인 ‘십자가당 사건’으로 남궁억이 구속되면서 사립 모곡학교는 폐교되었고, 모곡교회도 명맥이 끊어졌다.
현재 옛 모곡교회와 모곡학교 터에는 한서남궁억기념관(2004년 6월 개관)과 옛 예배당이 복원되어 있고, 그 옆에 한서기념교회와 무궁화 동산이 조성되어 있다. 기념관에는 무궁화 십자가당 사건 취조 장면 재현, 보리울 모곡학교 모형, 남궁억의 붓글씨와 저서, 『독립신문』 영인본, 『황성신문』 영인본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무궁화 자수 지도와 그가 작사한 노래 중 10여 곡을 청취할 수 있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기념관 옆에는 말끔히 복원된 한서교회의 옛 교회 모곡교회 건물에는 남궁억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운데 흰 천을 중심으로 남녀가 따로 앉아 예배를 드리던 당시 모습이 인형으로 재현되어 있고, 풍금 및 남궁억의 친필 사본 족자가 전시되어 있다. 이 교회는 십자가당 사건으로 남궁억 선생이 구속되자 일제에 의해 강제로 뜯겨 폐쇄된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