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주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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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때, 백제 부흥을 위해 항전하다 주류성이 함락되자 일본으로 망명한 백제의 유민.
곡나진수 (谷那晋首)
삼국시대 때, 백제 부흥을 위해 항전하다 주류성이 함락되자 일본으로 망명한 백제의 유민.
개암사는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묘련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이 절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울금바위는 백제의 유민들이 왕자 부여풍(扶餘豐)을 옹립하고, 3년간에 걸쳐 백제부흥운동을 폈던 주류성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1749년이라는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부암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 및 초본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1689년에 조성된 개암사 동종이 있다.
능가산 개암사 (楞伽山 開巖寺)
개암사는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묘련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이 절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울금바위는 백제의 유민들이 왕자 부여풍(扶餘豐)을 옹립하고, 3년간에 걸쳐 백제부흥운동을 폈던 주류성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1749년이라는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부암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 및 초본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1689년에 조성된 개암사 동종이 있다.
건지산성은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에 축조된 성곽이다. 테뫼식과 포곡식이 결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주류성으로 비정되기도 하는데, 출토 유물을 통해 12세기 이후 포곡식 산성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성의 규모는 테뫼식 산성이 둘레 350m, 포곡식 산성이 1,384m이다. 성내에는 건물지를 비롯하여 우물지, 여단지, 군창지, 봉서사 등이 남아 있다.
건지산성 (乾芝山城)
건지산성은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에 축조된 성곽이다. 테뫼식과 포곡식이 결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주류성으로 비정되기도 하는데, 출토 유물을 통해 12세기 이후 포곡식 산성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성의 규모는 테뫼식 산성이 둘레 350m, 포곡식 산성이 1,384m이다. 성내에는 건물지를 비롯하여 우물지, 여단지, 군창지, 봉서사 등이 남아 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주체가 되어, 일본의 지원병과 합세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과 벌였던 국제적인 싸움.
백강구전투 (百江口戰鬪)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주체가 되어, 일본의 지원병과 합세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과 벌였던 국제적인 싸움.
우금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우금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해발 340m 우금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주변 봉우리를 아우르고 있으며, 둘레 3,960m에 달하는 대규모 석축 산성이다. 백제 부흥운동의 최후 거점이었던 주류성으로 비정되어 왔으나 수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백제 축성 관련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성벽은 자연 지형을 따라 능선을 연결하며 쌓아 사다리꼴에 가까운 모양이다. 성벽 몸체 부분의 축조 방식이나 출토 유물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 내기 위해 쌓은 '입보용 산성'으로 추정된다.
우금산성 (禹金山城)
우금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우금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해발 340m 우금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주변 봉우리를 아우르고 있으며, 둘레 3,960m에 달하는 대규모 석축 산성이다. 백제 부흥운동의 최후 거점이었던 주류성으로 비정되어 왔으나 수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백제 축성 관련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성벽은 자연 지형을 따라 능선을 연결하며 쌓아 사다리꼴에 가까운 모양이다. 성벽 몸체 부분의 축조 방식이나 출토 유물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 내기 위해 쌓은 '입보용 산성'으로 추정된다.
흑치상지는 삼국시대 백제의 달솔로, 풍달군장을 역임한 관리이자 장군이다. 백제 멸망시 항복했으나 당나라 군의 약탈에 분개하여 족장 10여 명과 함께 임존성을 근거지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한때 기세를 떨쳤다. 하지만 다시 항복한 다음 당나라 편에 서서 임존성 함락을 도운 후 당에 가서 무관이 되었다. 부흥운동 종식 후 웅진도독부의 군장이 되었다가 신라의 공격으로 도독부가 소멸하면서 다시 당으로 돌아갔다. 토번과 돌궐을 치는 데 공을 세워 귀족 작호까지 받았으나 측천무후 때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로 옥에 갇혔다가 자결했다.
흑치상지 (黑齒常之)
흑치상지는 삼국시대 백제의 달솔로, 풍달군장을 역임한 관리이자 장군이다. 백제 멸망시 항복했으나 당나라 군의 약탈에 분개하여 족장 10여 명과 함께 임존성을 근거지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한때 기세를 떨쳤다. 하지만 다시 항복한 다음 당나라 편에 서서 임존성 함락을 도운 후 당에 가서 무관이 되었다. 부흥운동 종식 후 웅진도독부의 군장이 되었다가 신라의 공격으로 도독부가 소멸하면서 다시 당으로 돌아갔다. 토번과 돌궐을 치는 데 공을 세워 귀족 작호까지 받았으나 측천무후 때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로 옥에 갇혔다가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