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주자학"
검색결과 총 9건
송시열은 조선 후기 효종~숙종 대 문신이이자 학자로서 김장생·김집의 제자이며, 주희와 이이의 학문을 모범으로 삼았다. 효종 대 중국 청나라에 대한 복수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북벌에 동참하였고, 현종 대 화양동을 비롯한 고향에 은거하며 존주대의의 확립에 힘썼다. 숙종 대 초반 예송의 책임을 지고 유배 생활을 겪은 뒤, 경신환국 이후 다시 출사하여 조선중화주의의 실현에 앞장섰다. 그러나 원자 정호를 반대한 이유로 기사환국 때 사사되었다.
송시열 (宋時烈)
송시열은 조선 후기 효종~숙종 대 문신이이자 학자로서 김장생·김집의 제자이며, 주희와 이이의 학문을 모범으로 삼았다. 효종 대 중국 청나라에 대한 복수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북벌에 동참하였고, 현종 대 화양동을 비롯한 고향에 은거하며 존주대의의 확립에 힘썼다. 숙종 대 초반 예송의 책임을 지고 유배 생활을 겪은 뒤, 경신환국 이후 다시 출사하여 조선중화주의의 실현에 앞장섰다. 그러나 원자 정호를 반대한 이유로 기사환국 때 사사되었다.
송래희는 19세기 중엽 헌종과 철종 대의 유학자이며, 대사헌을 지낸 문신이다. 효종 때 산림이었던 동춘당 송준길의 후손이며, 1815년 진사 초시에 입격하였다. 1835년 선공감 가감역에 제수된 이후, 뛰어난 학덕으로 성균관 좨주, 대사헌 등에 제수되었다. 정통 주자학적 입장을 고수하여 독서를 통해서 이치를 깊이 연구하고, 예의 실천을 중시하였다. 퇴계의 이기호발설을 비판하고 율곡의 이기일원론의 입장을 긍정하였다. 저서로는 『성리논변』과 『금곡선생문집』이 전한다.
송내희 (宋來熙)
송래희는 19세기 중엽 헌종과 철종 대의 유학자이며, 대사헌을 지낸 문신이다. 효종 때 산림이었던 동춘당 송준길의 후손이며, 1815년 진사 초시에 입격하였다. 1835년 선공감 가감역에 제수된 이후, 뛰어난 학덕으로 성균관 좨주, 대사헌 등에 제수되었다. 정통 주자학적 입장을 고수하여 독서를 통해서 이치를 깊이 연구하고, 예의 실천을 중시하였다. 퇴계의 이기호발설을 비판하고 율곡의 이기일원론의 입장을 긍정하였다. 저서로는 『성리논변』과 『금곡선생문집』이 전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 김우옹(金宇顒, 1540~1603)이 편찬한 『속자치통감강목』의 판목.
속자치통감강목 판목 (續資治通鑑綱目 板木)
조선 중기의 문신 김우옹(金宇顒, 1540~1603)이 편찬한 『속자치통감강목』의 판목.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 경내에 있는 안향 등 3인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건물.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 묘 (榮州 紹修書院 文成公 廟)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 경내에 있는 안향 등 3인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건물.
조선후기 문신·학자 송시열이 주희의 『주자대전』에서 서(書)‚ 봉사‚ 설·서(序) 등을 모아 엮은 유학서.
주문초선 (朱文抄選)
조선후기 문신·학자 송시열이 주희의 『주자대전』에서 서(書)‚ 봉사‚ 설·서(序) 등을 모아 엮은 유학서.
주자학의 학문 방법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유학서.
위학절도 (爲學節度)
주자학의 학문 방법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유학서.
『농려집』은 1895년 학자 강헌규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그의 학문과 문학 세계를 총망라한 10권 5책의 목판본이다. 강헌규는 주자학, 춘추학, 예학에 정통한 유학자로서, 생전에 일부 글을 정리해 두었고, 그의 아들 강면이 1895년에 간행했다. 이 문집에는 권1~2의 한시 188수를 비롯해 편지, 잡저, 기행문, 서문, 발문, 제문, 묘지명, 행장 등 다양한 문체의 글이 수록되어 있어, 그의 학문적 깊이와 문학적 성취를 잘 보여 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농려집 (農廬集)
『농려집』은 1895년 학자 강헌규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그의 학문과 문학 세계를 총망라한 10권 5책의 목판본이다. 강헌규는 주자학, 춘추학, 예학에 정통한 유학자로서, 생전에 일부 글을 정리해 두었고, 그의 아들 강면이 1895년에 간행했다. 이 문집에는 권1~2의 한시 188수를 비롯해 편지, 잡저, 기행문, 서문, 발문, 제문, 묘지명, 행장 등 다양한 문체의 글이 수록되어 있어, 그의 학문적 깊이와 문학적 성취를 잘 보여 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박충좌는 고려 후기에 판전민도감사, 찬성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백이정 아래에서 주자학을 배웠으며, 충선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였다. 이후 충숙왕 아래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원칙적으로 행정을 처리하였다. 충목왕 즉위 이후 서연관이 되었으며 정방을 맡았다. 이곡, 이제현, 민사평 등의 당대 유학자들과 교류하였다.
박충좌 (朴忠佐)
박충좌는 고려 후기에 판전민도감사, 찬성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백이정 아래에서 주자학을 배웠으며, 충선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였다. 이후 충숙왕 아래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원칙적으로 행정을 처리하였다. 충목왕 즉위 이후 서연관이 되었으며 정방을 맡았다. 이곡, 이제현, 민사평 등의 당대 유학자들과 교류하였다.
『사변록』은 조선 후기 주자학자 박세당이 유교 경전을 해석한 주석서이다. 처음에는 『통설』로 불리다 후에 『사변록』으로 개칭되었다. 주자학적 유교 경전에 대한 비판적 견해로 인해 우암 송시열의 후학인 김창협 등에게 사문난적으로 비판받았으며, 그러한 인식의 연장선에서 윤휴와 함께 조선 후기 실학적 경전 해석의 선구로 받아들여졌다. 근래 연구를 통해 『사변록』은 저술 동기와 격물치지 등에 대한 해석, 「대학」 본문의 재배열 등의 측면에서 박세당을 사문난적으로 몰거나 탈·반 주자학자로 평가할 근거는 없는 것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사변록 (思辨錄)
『사변록』은 조선 후기 주자학자 박세당이 유교 경전을 해석한 주석서이다. 처음에는 『통설』로 불리다 후에 『사변록』으로 개칭되었다. 주자학적 유교 경전에 대한 비판적 견해로 인해 우암 송시열의 후학인 김창협 등에게 사문난적으로 비판받았으며, 그러한 인식의 연장선에서 윤휴와 함께 조선 후기 실학적 경전 해석의 선구로 받아들여졌다. 근래 연구를 통해 『사변록』은 저술 동기와 격물치지 등에 대한 해석, 「대학」 본문의 재배열 등의 측면에서 박세당을 사문난적으로 몰거나 탈·반 주자학자로 평가할 근거는 없는 것으로 재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