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규(姜獻奎: 1797~1860)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경인(京仁), 뒤에 경수(景受)라 고쳤다. 호는 수소재(守素齋) · 농려(農廬)이다. 1822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으로 들어가 일생 동안 학문에 종사했다.
10권 5책의 목판본으로, 권수제 및 판심제는 ‘농려집(農廬集)’이다. 각 권수에는 목차가 수록되어 있으며, 책의 맨 끝에 강헌규의 삼남인 강면(姜𨬋)이 지은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강헌규는 생전에 자신의 글을 일부 자편해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1894년(고종 31) 강헌규의 삼남인 강면이 자신의 조부인 강필효(姜必孝)의 시문집 『해은유고(海隱遺稿)』를 목판으로 간행하고, 이어서 다음 해인 1895년에 부친 강헌규의 시문집을 목판으로 간행했다.
권1~2에는 188수의 한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대체로 창작 순서대로 배열했다. 권3에는 이양연(李亮淵) 등 40명에게 보낸 편지글이 대상별로 실려 있다. 권4는 잡저로, 학문의 유래와 방법을 설명한 「유학(諭學)」, 『춘추(春秋)』를 연구한 「춘추문목(春秋問目)」‧「춘추의열(春秋義例)」‧「춘왕정월변(春王正月辨)」‧「춘왕정월후변(春王正月後辨)」, 예법을 연구한 「정강성체협설변(鄭康成禘祫說辨)」‧「삼례고증(三禮考證)」 등이 있다. 권5는 1847년(헌종 13) 8월 회양부사로 재직 중이던 부친을 뵈러 가는 길에 금강산을 유람한 「유금강록(遊金剛錄)」이다. 권6은 서 9편, 기 16편, 권7은 발 26편, 제문 8편, 권8은 제문 11편, 상량문 3편, 묘표 2편, 묘지 4편, 행장 3편이 실려 있다. 권9는 부친 강필효와 양부 강필로(姜必魯) 각각에 대한 행장, 이한중(李漢中)을 대상으로 한 「녹문거사전(鹿門居士傳)」이 실려 있다. 권10은 부록으로, 강헌규를 대상으로 한 이돈우(李敦宇)의 묘갈명, 김소(金熽)의 묘지, 강면(姜𨬋)의 가장(家狀)과 유사(遺事)가 실려 있다. 또 강면규(姜冕奎), 최운황(崔雲璜), 유형진(柳衡鎭), 김기헌(金騏獻) 등이 지은 제문과 만사가 실려 있다.
『농려집』은 강헌규의 학문 및 문학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그는 생부인 강필효에게 가학을 전수받았고 역사와 전장에 두루 밝았는데, 특히 주자학과 춘추학, 그리고 예학에 정통한 학자였다. 「주서요어서(朱書要語序)」, 「춘추의열(春秋義例)」, 「삼례고증(三禮考證)」 등의 저술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아울러 200수에 가까운 각종 시체의 한시 작품들, 「유금강록(遊金剛錄)」을 비롯해 「농려기(農廬記)」‧「함일당기(涵一堂記)」‧「녹문거사전(鹿門居士傳)」 등의 한문 산문을 통해 그의 문학적 성취를 가늠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