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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 승도의 난은 고려 후기 무신정권에 불만을 품은 승려들이 개경에서 일으킨 저항이다. 1174년(명종 4) 귀법사(歸法寺) 승려들의 저항을 시작으로 1217년(고종 4)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에 대비해 종군(從軍)하던 승려들이 저항을 일으켰다. 이들 저항의 이면에는 무신정변 이전까지 고려 불교계를 이끌었던 교종(敎宗) 교단이 무신정변으로 인하여 그들을 후원했던 왕실과 문벌 귀족들의 권력이 약화하고, 선종(禪宗) 교단으로의 교체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개경 승도의 난 (開京 僧徒의 亂)
개경 승도의 난은 고려 후기 무신정권에 불만을 품은 승려들이 개경에서 일으킨 저항이다. 1174년(명종 4) 귀법사(歸法寺) 승려들의 저항을 시작으로 1217년(고종 4)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에 대비해 종군(從軍)하던 승려들이 저항을 일으켰다. 이들 저항의 이면에는 무신정변 이전까지 고려 불교계를 이끌었던 교종(敎宗) 교단이 무신정변으로 인하여 그들을 후원했던 왕실과 문벌 귀족들의 권력이 약화하고, 선종(禪宗) 교단으로의 교체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조성도감은 고려시대에 주로 궁궐의 토목, 영선(營繕) 사업을 관장하던 관부이다. 이 관부는 현종 대 이래 고려 말기까지 확인된다. 현종 대에 조성도감에 원리(員吏)가 있었으며, 우왕 대에는 판사(判事)가 확인되지만, 조성도감의 정확한 직제는 알 수 없다.
조성도감 (造成都監)
조성도감은 고려시대에 주로 궁궐의 토목, 영선(營繕) 사업을 관장하던 관부이다. 이 관부는 현종 대 이래 고려 말기까지 확인된다. 현종 대에 조성도감에 원리(員吏)가 있었으며, 우왕 대에는 판사(判事)가 확인되지만, 조성도감의 정확한 직제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