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개경 승도의 난은 고려 후기 무신정권에 불만을 품은 승려들이 개경에서 일으킨 저항이다. 1174년(명종 4) 귀법사(歸法寺) 승려들의 저항을 시작으로 1217년(고종 4)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에 대비해 종군(從軍)하던 승려들이 저항을 일으켰다. 이들 저항의 이면에는 무신정변 이전까지 고려 불교계를 이끌었던 교종(敎宗) 교단이 무신정변으로 인하여 그들을 후원했던 왕실과 문벌 귀족들의 권력이 약화하고, 선종(禪宗) 교단으로의 교체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정의
고려 후기, 무신정권에 불만을 품은 승려들이 개경에서 일으킨 저항.
발단
경과 및 결과
그러나 그해 12월 정중부(鄭仲夫)의 아들 정균(鄭筠)의 계책에 의해 승려 종참(宗旵) 등이 선의문(宣義門)에서 이의방을 죽였는데, 이는 무신정권 초기의 사원 세력을 짐작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또한 1178년(명종 8) 흥왕사(興王寺)의 승려가 저항을 꾀하다가, 산원(散員) 고자장(高子章)과 함께 잡혀 살해된 일이 있었다.
여기서 중광사 · 홍호사 · 흥왕사는 왕실의 원찰(願刹)이었고, 나머지 사원들도 왕실이나 문벌 귀족들과 연결되었다. 이런 점은 무신정변 이후 무신정권과 사원 세력 간의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1217년(고종 4)에는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에 대비해 종군하던 승려들이 잦은 공역(工役)에 시달린 데 원한을 품고 저항을 일으켰다. 즉, 1216년(고종 3) 몽골에 쫓긴 거란유종이 고려에 침입하자 승군(僧軍)도 참전했는데, 그 가운데 개경의 흥왕사 · 홍원사(弘圓寺) · 경복사(景福寺) · 왕륜사(王輪寺)와 시흥의 안양사(安養寺), 광주(廣州)의 수리사(修理寺)의 승군이 저항을 일으켰다. 이들은 최충헌을 죽이려고 거짓으로 적에게 쫓기는 것처럼 하여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최충헌에게 아부하면서 자주 요역(徭役)을 일으켜 사원을 피폐하게 한 낭장(郎將) 김덕명(金德明)의 집을 부수고, 다음에 최충헌의 집을 치기로 하였다. 이때 최충헌이 가병(家兵)을 보내어 승군을 공격하게 하였고, 이때 살해된 승려는 무려 800여 명이나 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김당택, 『고려무인정권연구』(새문사, 1987)
- 채상식, 『고려후기불교사연구』(일조각, 1993)
- 김광식, 『고려 무인정권과 불교계』(민족사, 1995)
논문
- 민현구, 「월남사지 진각국사비의 음기에 대한 일고찰」(『진단학보』 36, 진단학회, 1973)
- 변태섭, 「농민·천민의 난」(『한국사』 7, 국사편찬위원회, 1981)
- 진성규, 「최씨무신정권과 선종」(『불교연구』 6·7, 한국불교연구원, 1990)
- 金鍾國, 「高麗武臣政權と僧徒の對立抗爭に關する一考察」(『朝鮮學報』21·22, 朝鮮學會, 196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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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살림살이에 쓰는 그릇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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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사람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켜 주는 모든 물건. 이것을 획득하는 데에 대가가 필요한 것을 경제재라고 하며, 필요하지 않은 것을 자유재라고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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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던 법당. 궁중에 둔 것은 내불당 또는 내원당이라 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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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나라에서 정남(丁男)에게 구실 대신 시키던 노동.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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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권세를 가진 개인이 사사로이 길러서 부리는 병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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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대대로 특정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가진 귀족.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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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공격해 오는 대상을 기다리고 있다가 도중에서 맞받아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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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꾀나 방법을 생각해 냄. 또는 그 꾀나 방법.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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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지치고 쇠약하여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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