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사 ()

불교
유적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추정되는 절.
유적/건물
건립 시기
통일신라시대 추정
소재지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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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수리사는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추정되는 절이다. 고려시대 수좌 관오가 주지로 있었다. 법상종 사찰로, 고려 무인 정권기인 1217년에 최충헌 제거 반란에 가담하였다. 최근 수리사 대웅전 뒤편에서 통일신라 때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상이 발견되었다.

정의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추정되는 절.
건립경위

수리사(修理寺)의 창건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진흥왕(眞興王) 때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근거가 없다. 수리사가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고려시대 승려 수좌(首座) 관오(觀奧)의 묘지명이다. 묘지명에는 수좌가 1154년(의종 8)에 수리사 주지를 맡았다고 써 있다. 수리사가 12세기에 세워진 것은 확실하다. 최근 수리사 근처에서 통일신라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상이 발견되어 절의 창건 연대는 통일신라까지 소급될 수 있다.

변천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수리사는 무인 정권기인 1217년(고종 4)에 개경의 흥왕사와 홍원사, 경복사, 왕륜사, 안양의 안양사와 더불어 최충헌(崔忠獻) 제거 반란에 참여하였다. 조선시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수리사가 보인다. 전하는 말에 조선시대 곽재우(郭再祐)가 중창하였다고 하나 근거가 없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보이지 않아 쇠락한 것으로 보이지만, 1899년(광무 3) 『범우고(梵宇攷)』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명맥은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이후에 중건되었다. 2010년 수리산 일대에서 실시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과정 중, 대웅전 뒤편에서 금동불상이 발견되었다.

의의 및 평가

수리사는 고려시대 지방의 법상종(法相宗) 사찰로 무인 정권기 반란에 참가한 이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범우고(梵宇攷)』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논문

조경철, 「군포 수리산 수리사의 역사와 그 가치」(『명랑경기학』, 경기문화재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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