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수리사는 무인 정권기인 1217년(고종 4)에 개경의 흥왕사와 홍원사, 경복사, 왕륜사, 안양의 안양사와 더불어 최충헌(崔忠獻) 제거 반란에 참여하였다. 조선시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수리사가 보인다. 전하는 말에 조선시대 곽재우(郭再祐)가 중창하였다고 하나 근거가 없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보이지 않아 쇠락한 것으로 보이지만, 1899년(광무 3) 『범우고(梵宇攷)』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명맥은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이후에 중건되었다. 2010년 수리산 일대에서 실시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과정 중, 대웅전 뒤편에서 금동불상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