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산 사자암

  • 종교·철학
  • 유적
  • 삼국
백제 때 세워진 사찰.
이칭
  • 이칭사자사(獅子寺)
유적/건물
  • 건립 시기백제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한국고대사)
  • 최종수정 2024년 11월 29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사자암은 백제 때 세워진 사찰이다. 당시 이름은 사자사였으며, 용화산 중턱에 위치하였다. 사자사의 지명 법사는 백제의 서동을 도와 황금을 신라에 실어 보냈고, 나중에 무왕이 미륵사를 세울 때 연못을 메꿔주었다. 미륵사는 미륵하생, 용화사는 미륵상생 신앙과 관련이 있다.

정의

백제 때 세워진 사찰.

건립 경위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백제 때 기와가 발견되어 백제 때 건립된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사자사’란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는데, 『삼국유사』에 나오는 사자사와 같은 절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의 서동이 신라의 선화공주를 꾀어 금마저에 왔을 때, 사자사의 지명 법사가 서동이 보아둔 곳에 쌓여진 황금을 수레에 실어 신라로 보내주게끔 해주었다고 한다. 또 나중에 백제의 무왕이 선화공주와 함께 익산 용화산(미륵산) 사자사의 지명 법사를 찾아가다 연못에서 미륵 삼존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이곳에 연못을 메우고 3탑 3금당의 미륵사를 지었다고 한다. 이때 연못을 메우는 일도 지명 법사가 도와주었다고 한다. 최근 미륵사탑에서 『사리봉영기』가 출토되어 선화공주가 아닌 사택왕후가 미륵사를 창건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그렇다면 사자사의 지명이 사택왕후를 도와 미륵사를 창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변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 에 사자사(獅子寺)로 나온다.

의의 및 평가

미륵사가 미륵하생 신앙을 의미한다면 사자사는 미륵상생 신앙과 관련이 있다.

참고문헌

  • 원전

  • - 『삼국유사』

  • 단행본

  • - 『사자암 발굴조사보고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1994)

  • 논문

  • - 조경철, 「백제 익산 미륵사 창건의 신앙적 배경」, (『한국사상사학』 32, 2009)

  • - 최연식, 「삼국시대 미륵신앙과 내세의식」 (『고대인의 정신세계』,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2002)

주석

  • 주1

    :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의 다른 이름. <서동요>를 지었다고 한다. 우리말샘

  • 주2

    : 백제 때에, ‘익산’을 이르던 이름.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