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십조는 1196년(명종 26),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무인 집정자 최충헌(崔忠獻)이 국왕 명종에게 올린 일종의 시무책(時務策)으로서, 정변의 정당화 및 향후 정책 방향을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무신정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최충헌은 이의민을 비롯한 무신란 이후의 초기 정권이 실패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무력에 의한 정권 유지에 의지함으로써 정변에 대한 정당성 확보에 실패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정변에 대한 정당성이란 과거의 적폐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점을 분명히 하고 그 개선 방안을 정책으로 제시하고 실천한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개혁이 국왕의 권위를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최충헌의 문제의식이 봉사십조에 나타나 있다.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최충헌은 폐정 개혁안을 제시하여 정변에 대한 명분을 확보하고 반대 세력에 대해서는 강력한 탄압을 불사함으로써 독재적 권력 형성에 성공하였다.
도합 10개조로 된 이 봉사(封事)의 내용은 ① 국왕의 정전(正殿) 사용, ② 함부로 설치된 관직의 정리, ③ 탈점된 토지의 환수, ④ 불법적 조세 과징의 억제, ⑤ 안찰사의 진상 중지, ⑥ 승려의 정치 관여 금지, ⑦ 향리에 대한 적정한 관리, ⑧ 관직의 사치 풍조 억제와 검소한 기풍 진작, ⑨ 비보사찰 외의 남설된 원찰(願刹) 정리, ⑩ 대간의 활성화에 의한 언로 소통 등을 건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제1조와 6조는 최충헌 정권이 고려 왕실을 보위한다는 명분을 우선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이자겸의 난 때 불탄 연경궁이 복원되었음에도 왕은 정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수창궁을 이용하고 있었다. 이에 정전 사용을 강조한 것이 제1조이다. 제6조 승려의 정치 관여 금지라는 것도 표면상으로는 왕권의 존중이라는 명분을 갖는 것이다.
제2조부터 9조까지는 대체로 적폐에 대한 개혁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여러 명목에 의한 관리 수의 증가는 국가 재정에 대한 압박 요인이 되었다(2조). 동시에 관직자에 대한 사치 풍조를 경계하고 검소한 기풍을 진작하는 것은 정치의 중심이 되는 행정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8조).
탈점된 토지를 환수하고(3조), 불법적 조세 과징을 억제하는 일(4조), 안찰사의 진상을 중지하는 일(5조), 향리에 대한 적정한 관리(7조), 함부로 지어진 원찰을 정리하는 일(9조)은 대체로 민생과 직결되어 있는 적폐를 개혁한다는 명분에 의하여 뒷받침되었다.
제10조 대간 기능의 회복과 활성화는 관료 시스템의 정상화를 지향하겠다는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개혁은 태조의 정법(正法)에 따른다고 하였다. 봉사십조는 최충헌의 정치 운영이 명분을 중시하는 매우 조직화되고 계획적인 설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시무책의 제시에 의하여 최충헌은 자신의 정변이 고려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과거의 정치적 폐단을 혁신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에 의하여 최충헌은 정변의 정당화와 반대 세력의 효과적 억제 및 권력 안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 설정의 명분을 축적함으로써 집권 초기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 방향의 제시가 근본적으로 자기 권력의 안정화를 추구하는 수단이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국왕의 권위를 강조하는 것은 그 권위의 보위자로서의 최충헌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었으며, 대간의 활성화도 최충헌이 관료들에 대한 적절한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