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108년(예종 3) 2월, 9성을 개척한 윤관이 9성의 가장 북쪽에 있는 공험진 선춘령에 세운 국경 경계비.
건립 경위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동계에 “예종 2년(1107)에 윤관 · 오연총이 군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쳐서 쫓아내고 9성을 설치하고 공험진의 선춘령에 비를 세워 경계로 삼았다.”라는 기록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서는 비의 건립 시기가 임언(林彦)이 윤관의 공적문을 작성하여 영주(英州)의 남청(南廳)에 걸었던 것과 같은 시기인 예종 3년(1108) 2월이라 하였다.
내용
현재 실물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정계비가 윤관 9성의 축성 위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윤관이 정계비를 세운 목적은 9성 축성 이후 여진과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 위한 목적과 고려군의 전공을 명시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위치
한백겸(韓百謙)은 9성이 길주 이남에 있었고, 경계비가 마운령에 세워졌다는 주장을 하였으나, 이익(李瀷), 이종휘(李種徽) 등 실학자들은 두만강 이북설을 주장하였다. 김구진, 방동인, 이인철 등은 윤관의 비가 두만강 북쪽 7백 리에 위치한 선춘령에 있다고 한 견해를 지지하여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인철은 현지 답사를 통하여 그 위치를 헤이룽장성 동녕현에 있는 ‘고려령’으로 추정하기도 하였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단행본
- 방동인, 『한국의 국경 획정 연구』(일조각, 1997)
논문
- 이인철, 「고려 윤관이 개척한 동북9성의 위치 연구」(『선도문화』 23, 2017)
- 김구진, 「공험진과 선춘령비」(『백산학보』 21, 1976)
- 방동인, 「윤관 구성 재고」(『백산학보』 21, 1976)
주석
-
주1
: 흑룡강을 사이로 러시아와 접하여 있는 중국 동북부의 성. 금ㆍ석탄 따위의 광물과 콩ㆍ조 따위의 농산물이 난다. 성도(省都)는 하얼빈, 면적은 46만 3600㎢.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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