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135년(인종 13), 묘청(妙淸)이 반란을 일으킨 뒤 서경에 도읍하고 세운 나라의 국호.
배경
이자겸의 난으로 개경이 불타고 정치적 혼돈이 확산되면서 인종은 서경으로 자주 행차하면서 고려의 정치 개혁을 모색하였다. 이는 서경 세력의 정치적 입지에 동력을 가져다 주는 것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위기감을 갖게 된 개경 귀족 세력이 서경 세력을 견제하면서 정치적 갈등이 오히려 심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부식 등 개경의 귀족 세력이 서경 세력을 강력히 견제하자 인종도 점차 서경 세력을 멀리하였다. 왕권과 연계하여 정치적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하였던 서경 세력은 자신들의 의도가 좌절에 직면하자 1135년(인종 13) 1월, 묘청은 난을 일으키고 직접 개혁에 도전한 것이다.
형성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김남규, 『고려양계지방사연구』(새문사, 1989)
논문
- 박한남, 「고려의 대금외교정책 연구」(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강성원, 「묘청의 재검토」(『국사관논총』 13, 국사편찬위원회, 1990)
주석
-
주1
: 고려 시대에, 기본 관아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일정한 인원이나 기능을 분리하여 따로 둔 분관청. 개경의 관아를 서경에도 나누어 설치한 것이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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