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金安)의 초명은 김찬(金粲)이다. 김안의 가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김안은 1126년(인종 4) 인종의 내시지후(內侍祗候)로서 이자겸(李資謙)과 척준경(拓俊京)을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 그는 국왕의 명령으로 평장사(平章事) 이수(李壽), 전 평장사 김인존(金仁存)에게 계획의 실행 여부를 물어보았지만 반대에 부딪쳤다. 인종은 군대를 동원하였지만, 오히려 이자겸의 난을 유발하였다. 김안은 먼 곳으로 유배를 갔고, 처와 자식은 지방 관청의 노비가 되었다. 1126년(인종 4) 이자겸이 실각하자 김안은 소환되어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가 되었다.
1127년 인종이 김부식 등을 중국 송(宋)나라에 파견하였지만, 금(金)나라의 군대가 길을 막고 있어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송이 금의 군대를 물리치고 진격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안은 정지상(鄭知常)과 함께 고려군을 출병시켜 송의 군대를 맞이하자고 주장하였다. 인종이 김인존(金仁存)에게 출병 여부를 물으니, 그는 뜬소문을 믿는 것보다 김부식이 돌아오길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김부식은 잘못된 소문이라고 알렸고, 출병하지 않게 되었다.
1128년 김안은 정지상, 백수한(白壽翰)과 함께 인종에게 서경으로 수도를 옮길 것을 건의하였다. 내시낭중(內侍郞中) 김안은 서경의 명당인 임원역(林原驛: 지금의 평안남도 대동군 부산면 신궁동) 자리에 새 궁궐을 짓는 공사를 감독하였다. 1131년(인종 9) 내시소경(內侍少卿) 김안은 인종에게 허락을 받아 백수한이 쓴 천(天) · 지(地) · 인(人) 3정(庭)의 사의(事宜)에 대한 장(狀)을 관료들에게 논의하도록 하였다.
김안은 서경 궁궐 안의 8명의 성인에 대해 제사를 지내기를 인종에게 요청하였고, 묘청(妙淸)을 성인으로 받들게 하였다. 1135년 묘청의 난에 김부식 등이 진압군을 내보내려 할 때, 금에 사신을 보내어 조서를 받은 후에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후 김안이 무기를 모으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김부식은 정지상 등과 같이 궁궐로 불러들인 후에 김안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