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전기 묘청, 정지상 일파로 활약한 문신.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127년 인종이 김부식 등을 중국 송(宋)나라에 파견하였지만, 금(金)나라의 군대가 길을 막고 있어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송이 금의 군대를 물리치고 진격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안은 정지상(鄭知常)과 함께 고려군을 출병시켜 송의 군대를 맞이하자고 주장하였다. 인종이 김인존(金仁存)에게 출병 여부를 물으니, 그는 뜬소문을 믿는 것보다 김부식이 돌아오길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김부식은 잘못된 소문이라고 알렸고, 출병하지 않게 되었다.
1128년 김안은 정지상, 백수한(白壽翰)과 함께 인종에게 서경으로 수도를 옮길 것을 건의하였다. 내시낭중(內侍郞中) 김안은 서경의 명당인 임원역(林原驛: 지금의 평안남도 대동군 부산면 신궁동) 자리에 새 궁궐을 짓는 공사를 감독하였다. 1131년(인종 9) 내시소경(內侍少卿) 김안은 인종에게 허락을 받아 백수한이 쓴 천(天) · 지(地) · 인(人) 3정(庭)의 사의(事宜)에 대한 장(狀)을 관료들에게 논의하도록 하였다.
김안은 서경 궁궐 안의 8명의 성인에 대해 제사를 지내기를 인종에게 요청하였고, 묘청(妙淸)을 성인으로 받들게 하였다. 1135년 묘청의 난에 김부식 등이 진압군을 내보내려 할 때, 금에 사신을 보내어 조서를 받은 후에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후 김안이 무기를 모으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김부식은 정지상 등과 같이 궁궐로 불러들인 후에 김안을 죽였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최함묘지명(崔諴墓誌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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