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전기 탐라국의 태자.
가계 및 인적 사항
내용
「성주고씨가전(星主高氏家傳)」에 태조 왕건의 후삼국 통일 직후의 탐라국 성주는 고자견(高自堅), 왕자(王子)는 양차미(梁且美)로 나온다. 당시 탐라국은 한 세대에 한 번씩 조회하기로 하였는데, 태조는 그들을 특별히 대우하여 낮에 세 번씩 접견하였다고 한다. 음식과 접대하는 범절이 거의 임금과 비슷하게 하였고, 데리고 온 사람과 사공에 이르기까지 물품을 내려주어 우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말로를 보낸 사람이 고자견, 양차미라고 보기도 한다.
고려가 부여한 성주 · 왕자 작위는 탐라국에서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탐라국은 일종의 조공을 바치는 제후국의 위상을 지녔다. 성주 · 왕자의 호칭은 이후 1105년(숙종 10)에 탐라군(耽羅君)으로 개칭하여 탐라국이 고려의 군현(郡縣)으로 편제될 때까지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성주고씨가전(星主高氏家傳)』(『동문선(東文選)』)
논문
- 배재호, 「고려전기 무산계와 향직의 수여 배경과 운용」(『한국사론』 66,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2020)
- 김보광, 「고려전기 탐라에 대한 지배방식과 인식의 변화」(『역사와 담론』 85, 호서사학회, 2018)
- 김창현, 「고려~조선초 탐라고씨의 동향」(『한국중세사연구』 7, 한국중세사학회, 1999)
- 김창현, 「고려의 탐라에 대한 정책과 탐라의 동향」(『한국사학보』 5, 고려사학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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