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영(金貽永)의 아버지는 병부상서를 지낸 김선(金璿)이며, 인종의 두 번째 왕비 선평왕후(宣平王后)의 동생이다. 부인은 인종의 신임을 받던 정항(鄭沆)의 셋째 딸이다.
1132년(인종 10)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지공거(知貢擧) 최자성(崔滋盛)이 출제한 시험문제에 오류가 있었다. 이로 인해 과거 시험을 무효로 하자는 건의가 있게 된다. 그러자 김이영의 과거 시험 합격이 취소될 것을 염려한 정항과 한유충(韓惟忠), 그리고 왕비 등은 국왕에게 간청하여 시험 합격을 취소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후 김이영은 내시 호부원외랑(內侍 戶部員外郞), 1152년(의종 6) 지도성사(知都省事)를 거쳐, 1156년(의종 10)에는 우부승선(右副丞宣)에 이르렀다. 1157년 의종은 신망을 받던 동생 대령후(大寧侯) 왕경(王暻)을 유배 보냈다. 정서(鄭叙)는 정항의 아들이며, 왕경과 가까웠다는 이유로 거제현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때 김이영은 정서와 인척 관계였기에 지승평군사(知昇平郡事)로 강등되어 지방으로 내려갔다. 이후 1158년(의종 12) 다시 남경유수(南京留守)가 되었지만, 어느 때인가 여기서 쫓겨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1170년(의종 24) 무신정변이 일어나 명종이 즉위하자, 과거 의종에 의해 내쫓겼던 관료들이 용서를 받게 되었다. 이에 그는 정서 등과 함께 소환되어 관료에게 주는 직전(職田)을 되돌려 받았으며, 이후 상서(尙書)가 되었다. 그의 딸은 무신정변의 주역인 정중부(鄭仲夫)의 아들 정균(鄭筠)의 꼬임으로 부인이 되었다.